[대구근대미술의 향기] 서진달 '왼손을 입에 댄 나부'

입력 2010-11-16 07:54:15

세잔의 시각으로 탐구한 누드

영국의 저명한 문필가이자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nude)화를 단지 벗은 몸인 나체 그림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서양 미술의 전통 속에서 양식화된 포즈들을 이르는 말로 정의했다. 그래서 누드화의 특징은 옷을 벗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항상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조선에 처음 누드화를 선보일 때는 당시의 관습상 정면을 피하고 배면이나 측면의 자세를 취했다. 우리나라 작가가 그린 그런 누드화 최초의 예로는 흔히 김관호의 '해질녘'(1916)이란 작품을 든다.

그 작품으로부터 거의 20년 후에 제작된 서진달의 이 그림은 이미 누드를 바라보는 태도에 일어난 그간의 변화와 또 유화의 기법과 다양한 양식에 풍부해진 경험을 동시에 반영한다. 앞의 그림이 아카데믹한 화풍에 배면을 그린 것이었다면 이 그림은 모델의 정면을 한층 박진하게 그려 포즈가 바뀌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우선 인체를 멀리서 피상적으로 살피듯 재현한 것이 아니라 시야를 가로막듯 화면의 전면에 부각시켜 놓은 구성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다소 거칠듯 힘찬 붓질과 색채의 밝기나 대비의 강렬함이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침없고 대담한 기질을 보인다. 선묘 위주로 형태의 묘사에 접근해간 것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바위를 조각해 나가듯 면을 단위로 메스를 파악해 들어간 중후한 입체감은 디테일의 생략과 왜곡을 수반하는데, 단순화한 배경도 그렇고 과감한 처리가 세잔의 조형 방식을 탐구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빛을 이해하고 그림자를 역광으로 처리하면서 명암 관계에 색채를 사용하는 것과 검고 두터운 윤곽선이며 유화의 무게감 있는 톤의 표현 등에서 이 작품은 서진달의 조형적 관점이 오로지 세잔의 시각을 이해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몇몇 수채화 작품에서도 그런 태도가 현저하지만 그가 견고한 화면의 구축에 얼마나 능숙했던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델의 개성이나 심리적인 상태는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순전히 조형적인 문제의 탐구 대상으로만 누드의 모티프가 선택되지는 않지만.

그림 우측 상단에 작가의 수업기 작품임을 짐작하게 하는 서명이 있다. 불행하게 마감한 짧은 생으로 말미암아 그에 관한 기록들에는 여러 혼선이 있다. 1939년에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해 1941년 계성학교 미술교사로 근무, 김창락, 김우조, 백태호, 변종하, 추연근 같은 제자들에게 깊은 감화를 줬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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