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엔 유동성 호재…"향후 자산버블 우려 커져"

입력 2010-11-05 10:32:14

美 '양적완화' 또 6천억 달러 찍어 경기 부양, 세계경제 영향은?

미국이 또 돈을 풀었다. 달러를 찍어 미국 내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지출을 늘리겠다는 시도다.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한 미국의 '극약 처방'인 셈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일제히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향후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 유발 등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않다.

◆美, 양적완화에 세계 증시 들썩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6천억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세계 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를 기록했다. 뉴욕증시는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전 주가 수준을 회복했고, 유럽 주요국 증시도 동반 상승했다. 국내 증시도 코스피지수가 장중 1960선을 넘어서는 등 치솟고 있다.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9.84포인트(1.02%) 오른 1,962.34로 장을 시작했다. 장중 기준으로는 2007년 12월 7일 1,969.5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수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뉴욕 증시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4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지수는 전일보다 219.71p(1.96%) 오른 11,434.84로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는 23.10p(1.93%) 오른 1,221.06을, 나스닥 지수는 37.07p(1.46%) 오른 2,577.34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전 주가 수준이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오름세를 보였다. 4일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100지수는 전일 종가보다 1.98% 오른 5862.79로 마감했다. 역시 2008년 6월 6일(5906.80) 이후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독일과 프랑스 증시도 각각 상승세로 마감했다. 아시아권 증시도 올랐다. 일본 닛케이종합지수는 2.17%,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85% 급등했다. 대만 가권지수는 0.77% 강세를 보였다.

◆미국은 왜 자꾸 돈을 푸나?

미국이 돈을 찍어 뿌리는 이유는 더 이상 경기를 살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인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출 여지가 없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직접 달러를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유동성을 늘려 실질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것.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 장기 침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러나 연준의 2차 양적완화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 1차 양적완화를 통해 1조7천500억달러를 뿌리며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았지만 경제는 별다른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양적완화가 잠시 경기를 자극하는 '반짝 효과'는 있지만 장기 침체 위험을 막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돈이 넘쳐도 기업이나 가계가 빌려쓰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또 풀린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기면서 금이나 원유 등 실물 부문에 투기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양적완화는 달러화 약세를 불러와 환율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 약세 지속, 신흥국 경제에 악영향

달러가 더 풀리면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고,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는 절상압력을 받게 된다. 또 달러자금이 신흥국이나 원자재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신흥국의 자산거품과 물가상승 압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우리선물 변지영 연구원은 "시중에 풀린 달러가 미국의 실물경제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주요 이머징 경제나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돼 인플레 압력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원자재 수입국인 한국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율 갈등이 재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은행 이흥모 해외조사실장은 "미국의 이번 조치를 두고 '위장된 시장 개입이 아니냐'는 외국의 눈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논란은 상당히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와 선물환포지션 추가 축소 등 자본 유출입 규제 방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풍부한 달러는 일단 증시에는 호재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유동성 장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미국의 경비부양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아시아 증시를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과 개인의 자산가치가 불어나 투자와 소비, 고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산 거품을 일으키고,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채산성 악화도 우려된다. 삼성증권 신동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부문의 막대한 현금잉여, 마이너스 실질금리, 한국은행의 소극적인 출구전략 등을 고려할 때 1, 2년 내 자산가격 버블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양적완화 정책 때문에 금융자산과 상품 가격이 경제여건에 비해 과도한 거품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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