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돌려세운 후
가을볕은 우거지고
그 볕살, 진이 나도록 밟다가
기어이 홍진 속으로 퍼드러졌던
끔찍한 날 말없이 지켜보는
그가 수상해
그만 짜개어보는 실수 범하고 말았습니다
천지신명이여!
그를 업신여겨 두 동강낸 죄
저 핏덩이 내부까지 들어간 죄
잠시 미쳤던가 봅니다
헌데,
누군가 사랑을 또 청하고 있습니다
멀쩡하던 내가 알갱이째 뽑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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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석류는 시인의 손 안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석류는 시인의 사랑을 환유하는 매개적 도구로 차용되었을 뿐이니까. 아니, 시인은 석류를 노래하기 위하여 '그'라는 상징을 빌려왔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대상인 석류로 인해 촉발된 이미지를 그냥 이미지로 제시하지 않고 다만 다분히 주관적인 연쇄적 진술을 통해 환유적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석류이기도 하고, 사랑했던 '그'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두 동강 내는 것'에 다름 아니란 말인가. 피 흐르는 상대의 '내부'까지 들어가는 것이어서, 죄요 상처란 말인가. 잠시 미쳤던가 보다, 라고 후회하는 '실수' 같은 거란 말인가. 그 답은 정확히 진술되지 않았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 사랑을 또 청하고 있"으니 "멀쩡하던 내가 알갱이째 뽑힐 것 같"다는 사실! 사랑의 정의를 누가 묻는다면 시인은 단호하게 대답할 게다. 사랑이란, 멀쩡하던 내가 알갱이째 뽑혀 나가는 것!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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