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질감∼섬세한 터치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동양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곽훈은 그 문제에 깊이 천착해왔다. 작가가 찾은 해답은 '기'(氣). 어릴 적 땅을 파면 나왔던 가야시대의 토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지난 40여년 동안 '다완' '기(氣)' '겁(劫)'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예술의 궁극의 핵심인 '정신'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그는 아크릴 물감으로 바탕색을 칠한 뒤 적당히 말랐을 때 표면을 나이프로 긁어내고, 다시 다른 색의 바탕색을 칠해 긁어내는 작업을 최소 다섯 번씩 되풀이하는 기법으로 제작한다. 그 결과 작가의 거칠고 다양한 창조적 에너지와 내적 파동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5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신라에서 열리는 곽훈의 이번 전시회에는 신작 '최후의 만찬' 시리즈 등이 전시된다.
작가는 최근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최후의 만찬'은 12명의 사도들 이미지를 화폭에 거칠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 얼굴은 좀처럼 알아보기 힘들다. 흙빛의 거친 터치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미술평론가 황인 씨는 이를 두고 "역사라는 창문에서 빛나는 인물들을 만상의 고향인 땅으로 도로 내려 보내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또 작가의 자화상도 볼만하다. 녹이 슨 듯 어두운 색 위에 수십 개의 자화상을 그려 전시한다. 시시각각 변하지만 근원적으로 하나로 연결된 한 사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대구 달성군 출신인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와 유럽 지역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053)422-1628.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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