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꼽과 면도날

입력 2010-11-03 10:54:35

한반도의 '배꼽'(정중앙)은 강원도 양구이다. 경북 울릉군 독도(東), 평북 용천군 비단섬(西),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南), 함북 온성군 유포면(北)을 4극 기준점으로 삼아 선을 그으면 만나는 지점이 양구군 남면 도촌리이다. 독도와 마라도 등 섬을 제외하고 육지만을 기준점으로 삼을 경우 한반도의 배꼽은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가 된다.

그렇다면 영남의 배꼽은 어디인가? 8도(道) 체제를 유지하던 조선에서 경상도의 배꼽은 '달구벌'이었다. 조선은 대구부에 경상감영을 두고 경상도의 행정을 관할하게 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싸고 짓느냐 마느냐, 어디에 지어야 하느냐 등 논쟁이 한창이다. 비용 대비 편익비율(B/C)이나, 정책적 판단(AHP)이니 등등 어려운 이론들이 쟁명하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같은 조건이라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옳으며 단순한 데 해답이 있다는 말이다. 동남권 신공항이 '제 구실'을 하려면 당연히 경상도의 배꼽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그런데 대구경북이 신공항 입지로 미는 밀양은 경상도 배꼽 자리에서 한참 남쪽에 있다. 원래 대구경북민들이 원하던 신공항 자리는 영천이었다. 그러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다 별개의 국제공항을 짓는 것은 국가에 큰 짐이 되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대승적 관점에서 대구경북민들은 '영천 카드'를 일찌감치 접었다. 부산'경남'울산의 입장을 고려해 밀양으로 양보한 것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대구경북 사람들 통 크다"라고 말했다. 안마당이 아닌 경남에 동남권 공항이 들어서는 것을 지지하는 대구경북 사람들의 양보심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이 같은 양보가 결과적으로 잘못됐으며 시기적으로도 일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대구경북'경남'울산이 한목소리로 밀양을 미는데 부산이 가덕도를 이렇게 고집하고 나올 줄 몰랐다는 것이다.

부산의 가덕도 논리를 알아보다가 대충 이런 내용의 칼럼을 보았다.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의 사업이다. 왜 대구경북이 야단인가? 대구경북에 공항이 필요하면 대구경북에 지어라.' 이제 와서 생각이지만, 대구경북은 애초부터 영천을 요구한 뒤 밀양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현명했는지도 몰랐다.

부산의 욕심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리는 시누이'(수도권론자)는 더 얄밉다. 수도권론자들은 부산과의 과열 경쟁을 핑계 삼아 동남권 신공항 사업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지니 어쩌니, 인천공항 경쟁상대로서 하네다 공항이 떠오르니 어쩌니 등등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붙이며 신공항 무용론을 펴고 있는데 그 첨병에 중앙언론들이 있다.

수도권론자들은 '큰형(수도권)이 잘살아야 아우(지방)도 덕 본다'는, 용도 폐기해야 마땅할 논리를 수십 년째 우려먹고 있다. 묻고 싶다. 지금 아우가 어떠한 절망 속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건지. 이대로라면 지방엔 희망이 없다. 부모 등골 휘게 만들어 공부하고도 취직할 기업이 없고 신랑감도 없다. 향토 기업이 무너진 빈 자리에는 거대 유통 자본이 들어서 골목 상권을 피폐화시키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역효과는 이제 국가 경쟁력마저 갉아먹고 있다.

일부 정부 관료와 일부 중앙언론들은 신공항 입지 결정이 다음 정권으로 미뤄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올 연말만 넘기면 대선과 총선 때문에 신공항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지리라는 속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 발전 없이는 글로벌 경쟁도 담보할 수 없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동남권 신공항이 필수 인프라인데도, 이를 막겠다는 것은 지독한 수도권 이기주의일 뿐이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은 결과적으로 '전체'의 미래를 앗아간다. 암세포를 보라. 영양분을 주변 세포와 나누지 않고 혼자 먹는 탐욕을 가졌고 자기와 똑같은 것을 증식하는 데만 혈안이다. 암세포의 탐욕은 결국 전체 유기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자연에는 적자생존만 두드러져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경쟁보다 공생을 추구한 종(種)이 훨씬 더 번성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김해용(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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