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닮은 붉은 분지 먼 행성 여행하는 듯…
칠레 아타카마 사막은 요망하고 괴상한 SF코미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절실히 생각나는 특별한 사막이었다. 2005년 영화가 개봉할 당시 찬사와 비판이 극을 달렸던 황당 요란 시끌벅적 SF코미디 영화. 그 지루하고 난해한 원작 소설에서 지구 탈출 방법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첫째, 나사(NASA)에 전화해서 지금 빨리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라.
둘째, 만약 실패하면 백악관에 전화해서 설명하라.
셋째, 그래도 안 되면 크렘린에 전화해서 설명을 해 보라.
넷째, 그것마저도 안 된다면 엄청난 액수의 전화요금이 청구되기 전에(?) 지나가는 우주선을 세워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얻어 타라.
아타카마 사막은 우리들이 그동안 생각하던 사막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 행성이었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왠지 겨울의 아타카마 사막을 달렸던 우리들도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낯설고 황량한 외딴 행성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타카마 사막은 남미 칠레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600m 안팎의 분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강수량이 매우 적고 호수와 소금의 퇴적층으로 덮인 지역이 많다. 달과 흡사한 지형으로 인해 미국 나사에서 우주 탐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실험하는 곳이다. 또한 영화 속 배경으로도 종종 나오는데 최근의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의 무대이기도 했다.
대회의 시작은 인구 약 1천500명 정도의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자 아타카마의 관문 '산페드로'(San Pedro de Atacama)에 모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이곳에 모인 참가자들은 선수 등록과 장비 검사를 마치고 진정한 사막레이서로 변신을 하게 된다.
대회 출발은 해발 4,288m의 그림 같은 마추카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급경사의 계곡을 내려간다. 좌측으로는 푸른 호수와 아메리카 낙타인 '라마'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면 침을 뱉는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지나가면 입을 오물오물한다. 진짜 침을 뱉을 태세다. 한참을 내려가니 얼어붙은 계곡이 나온다. 얼음이 있는 곳은 그냥 지나가고 없는 곳은 조심조심 건너뛰고, 얼음과 갈대가 뒤덮인 이곳은 주위의 붉은 계곡과 함께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TV에서나 보던 큼지막한 선인장들이 보이고 다양한 색상의 골짜기 바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정신이 산란해진다.
내리막은 달리고 오르막은 걷고, 중간에 작은 인디오 마을을 지나게 되어 풍경을 스케치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더니 사진을 못 찍게 하면서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알고 봤더니 이들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카메라는 영혼을 뺏어가는 괴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산 위의 눈이 녹아 굽이굽이 이어지는 세찬 강물에 한번 빠졌다 나오면 온몸이 얼어버린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것은 기본이며, 키가 작은 참가자들이 코스를 잘못 잡으면 가슴까지 빠져 버린다. 16㎞의 계곡 코스가 첫날부터 사람을 잡는다. 수온 0~2℃ 정도의 차가운 강물을 헤치고 나가려면 상당한 에너지 소비와 인내력이 필요하다. 나중에 캠프에 도착한 참가자들을 보면 다들 죽었다 살아난 표정들이었다.
수천만 년에 걸쳐서 형성된 아타카마의 소금 사막은 바닥이 면도날 같아서 신발이 찢어지거나 잘못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와 험한 코스는 많은 이들에게 좌절의 아픔을 주었다. 또한 다른 지역 대회보다 비용도 많이 들기에 죽기살기로 덤비는 대회지만 완주율은 항상 평균치를 밑돈다. 그만큼 코스와 환경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주한 사람들의 상태가 다들 좋은 것도 아니다. 힘들게 완주했기에 후유증도 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환희를 맛보게 만드는 환상의 무대다.
신발이 찢어지고 발가락의 물집이 터지는 3일째와 4일째의 무지막지한 소금 사막을 지나 사막 레이스의 하이라이트 롱데이를 마치니 '산페드로'의 입성이 눈앞에 보인다. 항상 그렇지만 마지막 날에는 기쁨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온다. 지난일들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며 이대로 끝나기가 아쉬워지기만 한다.
골인은 산페드로 마을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코스 주변에는 먼저 도착한 참가자, 관광객, 현지 주민들이 나와서 환호를 하고 있는 게 영락없이 시끌벅적한 장터의 분위기다. 이 작은 마을에 있어 오늘 하루는 커다란 축제일이다. 그리고 축제의 주인공은 지난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며 같이 고생한 참가자, 운영진 모두다. 가슴 터질 듯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며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파란색 하늘을 바탕으로 오늘따라 산페드로 성당이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다.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는 2006년에 이어 2011년 대회 참가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만약 다시 한 번 참가한다면 사막레이스 그랜드슬램을 두 번 달성하는 전세계 유일의 사람이 된다.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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