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총장님, '꿈 科(과)'를 만드십시오

입력 2010-11-01 11:05:36

'지금 이 순간에도 적(敵)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붙어 있다는 슬로건의 하나다. 도서관에서 졸고 앉았든 눈을 뜨고 책을 읽든, 같은 시각 전 세계 대학 도서관과 강의실에서는 똑같은 젊은 세대 경쟁자들이 쉼없이 책장을 넘기며 공부, 또 공부하고 있다는 독려의 경구(警句)다.

그런 세계 최고의 하버드도 최근 30여 년 만에 교과과정을 대폭 수정, '공부벌레'가 아닌 글로벌 리더로 키워낼 수 있는 학과목으로 바꿨다. 미래 세계 차세대의 전쟁은 '교육 전쟁'임을 알고 글로벌 전쟁에 대비, 미래 병사(학생)들에게 실용적 학과 전술을 가르쳐 지적 신무기를 쥐여주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어떤 신지식과 감성으로 무장시켜 차세대 지구촌 젊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무사히 승자의 위치로 살아남게 할 것인가. 보름 후면 우리는 또 한 번 그런 목표 아래 수능(修能)을 치른다. 하버드는 SAT(우리의 수능시험) 성적 위주로만 뽑지 않는다. 금년 응시자 2만 2천796명 중 1천400점(만점 1천600점) 이상 고득점자는 전체의 56%밖에 안 된다. 그마저 56% 고득점자 중에 최종 합격한 학생은 2천74명으로 16% 선이다.

그렇다면 하버드는 다른 무엇을 원했기에 그런 변수를 만드는가. 과거의 하버드형(型) 공부벌레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 리더십, 특정 분야에 장점이나 기능을 가진 학생, 다시 말해 평범 속에 비범함이 드러나는 학생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능성과 꿈이 있는, 튀는 학생을 원한다는 얘기다. 돈 잘 버는 학과, 속칭 출세해서 권력이나 쥐는 학과에 몰려드는 비틀린 쏠림 현상이 대학 교육의 목표와 가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하버드는 일찍 깨치고 전광석화처럼 변신해 나가겠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대학들은 아직 수능생들을 끌어 모으기에 바빠 온갖 신설 과(科)들을 너도나도 풀빵 찍어내듯 만들어 백화점식 경영에 집착한다.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다. 2, 3년 반짝 끌고 갈 뿐 결국 학생은 안 오게 되고 학과 간판은 내려진 채 교수들만 팽개쳐진다. 아이들 또한 선배도 후배도 없는 벌판에 내던져진다. 단언컨대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현혹시켜 등록금 노리며 '장난'치는 죄악이다. 내년, 전국 418개 대학들 중 과연 몇 곳이 또 어떤 기묘한 학과들을 만들어 낼까.

얼마 전 서양학과 4학년 괴짜 녀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신학기 회화(繪畵) 강의실을 둘러봤을 때 의자 옆에다 '세계에서 제일 그림 잘 그리는 놈 자리'라고 써 둔 남교관이란 친구다. 그때 '이왕이면 '놈'보다는 '사람'이라고 써 붙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며칠 뒤 '놈'자를 지우고 '사람'이라고 고쳐 놓았던 친구의 편지글이다.

"총장님, 꿈과(科)를 만들어 주십시오.… 학생들이 열정을 불태우게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니 꿈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취업 걱정이 아닌, 오직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학교 제도 하나가 바꿔내는 변화보다 더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태양을 향해 던지는 돌이 더 멀리 날아간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꿈을 크게 꾼다면 설령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더라도 아예 꿈을 꾸지 않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현실은 안 그렇다' '먹고는 살아야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건 어떻게든 먹고삽니다. 나중에 인생의 끝자락에서 밥 좀 잘 먹고살지 못한 것과 꿈을 꿔보지도 못한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후회가 되겠습니까. 취직 걱정, 돈 걱정이 아닌 자기가 택한 길에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학교는 그 꿈을 키워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꿈은 없고 학점 따고 취직하는 데만 눈이 먼다면 아무리 좋은 교수가 와서 강의를 한들 무엇이 남겠습니까. 총장님! '꿈'이라는 학과를 만들어 주십시오…."

내년 신설 학과를 고심 중에 있는 시점에 받은 편지라 가슴이 찡하면서도 뜨끔하다. 새 학기엔 전국 대학 최초로 '꿈'이란 과목을 넣어봐야겠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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