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배려하는 '착한 소비' 아세요?

입력 2010-10-30 07:43:08

스리랑카 코끼리똥 종이·동티모르 피스 커피·티베트 망명자 지갑…

섬유질이 풍부한 코끼리똥으로 만든 종이를 수입하는 친환경기업 (주)스키즈 전충훈(오른쪽) 기획실장이 인형과 필기구, 스케치북 등 제품을 펼쳐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섬유질이 풍부한 코끼리똥으로 만든 종이를 수입하는 친환경기업 (주)스키즈 전충훈(오른쪽) 기획실장이 인형과 필기구, 스케치북 등 제품을 펼쳐놓고 설명을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제품의 가치를 구입하세요."

스리랑카 아기 코끼리 똥 종이와 동티모르산 커피, 티베트 망명자들이 직접 만든 지갑. 제품의 출신 국가는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 무역'(Fair Trade)을 통해 한국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최저 가격만 강조하는 합리적 소비와 대조적으로 가치를 구입하는 '착한 소비'가 대구 지역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스리랑카 코끼리 똥 종이에 얽힌 '착한 이야기'=코끼리 똥이 종이로 변신했다. 온라인 쇼핑몰 '민트 바스켓'을 운영하는 '스퀴즈'사는 코끼리 '응가 종이'를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다.

코끼리 똥 종이는 남다른 사연을 담고 있다. 수십 년 전 스리랑카는 코끼리와 인간이 사는 곳이 확실히 구분된 곳이었다. 26년 동안 내전으로 고통받았던 스리랑카 주민들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코끼리 동네에 불을 질러서 자신들의 구역을 확장했다. 그때 수많은 코끼리들이 희생됐고 아기 코끼리들은 고아가 됐다. 죄책감을 느낀 몇몇 주민들이 아기 코끼리 고아원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하루에 몇십t씩 발생하는 배설물이었다. 이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 일본인이 스리랑카를 방문했다가 기막힌 생각을 해냈다. 그는 섬유질이 풍부한 코끼리 똥을 말리고 끓여 종이를 만들었고 아기 코끼리의 똥은 그렇게 재탄생했다.

이처럼 스퀴즈사는 제품 속에 숨겨진 가치를 판매한다. 버려진 나무로 만든 연필, 화학재료를 쓰지 않고 스리랑카 정글에서 난 재료로 만든 파스텔도 그렇다. 이 때문에 이 업체 제품은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과정이 '착하다'. 전충훈(36) 기획실장은 "스리랑카 현지 주민들이 수작업으로 물건을 만들고 제품 판매의 일정 금액은 내전으로 고아가 된 현지 아이들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사용된다"고 말했다.

◆동티모르 '피스 커피'

대구 중구 삼덕동에는 마차처럼 생긴 자전거가 앞에 서 있는 '삼덕 길 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이 1천원인 이곳은 '공정 무역'으로 사들인 동티모르 유기농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다. 올해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카페는 '피스 트레이드'라는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피스 커피는 한국 YMCA가 동티모르의 커피 생산 농가를 지원해 생산한 제품이다. 가격 협상 과정도 커피 이름처럼 평화적이다. 원두 가격은 동티모르 현지 농민들이 결정하고 YMCA 측은 결정된 가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왜 하필 동티모르에서 착한 커피가 나오게 됐을까. 대구 YMCA 황정화 팀장은 "신생 독립국인 동티모르는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은 나라여서 이들 국가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YMCA가 도움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두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길 카페는 원두를 직접 소비하는 쪽을 택했다. 이곳 정남희(30) 씨는 "커피 전문점에서 1㎏에 1만2천원 하는 피스 커피 원두를 소비하는 것은 경제적인 면만 따지면 썩 이롭지는 않다"면서 "대신 우리가 직접 커피를 만들어 한 잔에 1천원씩에 팔고 있다"고 했다.

◆티베트 망명자 지갑

수많은 카페가 즐비한 경북대 북문가에는 조금 특별한 카페가 있다. '소연이네 녹색창고'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주인장 이름이 소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소연이는 '대구녹색소비자연대'의 줄임말이다.

카페 입구에는 활짝 웃고 있는 티베트 아이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선반을 가득 메운 수공예 지갑들은 사진 속 아이들의 어머니가 손으로 한땀 한땀 만든 것이다. 티베트 망명자가 몰려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는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시설 '록빠'(Rogpa)가 있다. 록빠는 티베트어로 친구를 뜻한다. 선반 위 지갑들이 인도에서 대구까지 넘어온 과정도 특별했다.

인도 여행을 떠난 한국 배낭여행자들이 록빠를 직접 찾아가 배낭 가득 제품을 넣어왔다. 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이라 생각하는 착한 여행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소영(23·여) 씨도 올해 여름 한 달간 인도에 머무르면서 록빠에서 물건을 날라왔다. 장 씨는 "이런 여행자들을 보고 '배낭 보따리 장수'라고 부른다. 한 개에 9천원 하는 지갑을 사가는 소비자들도 제품에 담긴 의미를 알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최저 가격으로 양적·질적 만족을 얻으려는 합리적 소비는 녹색창고가 걷는 방향과 다르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안재홍 사무처장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는 것이 공정무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물건을 살지 고민하는 소비자라면 제품의 가격보다 가치를 먼저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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