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감기관 혼내 줄 '한 방'을 찾다… 아! 벌써 새벽 2시

입력 2010-10-16 07:30:08

'국감 전쟁' 치르는 국회의원 보좌관의 하루

국회의원실에서 국정감사 자료를 국회 정론관 앞에 비치하면 기자들이 서둘러 나와 확인한다. 이렇게 수북하게 쌓이는 자료들의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국회의원실에서 국정감사 자료를 국회 정론관 앞에 비치하면 기자들이 서둘러 나와 확인한다. 이렇게 수북하게 쌓이는 자료들의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국회의원 보좌관(4급) Q씨는 오늘도 새벽에 퇴근한다. 해마다 이맘때, 국정감사는 그의 피를 말린다. 뜰 수 있는 기회이긴 한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어제는 밤을 꼬박 새웠다. 국회의원회관을 올려다본다. 새벽 2시, 불이 환한 의원실이 절반이다. 그야말로 독서실 분위기. "쯧쯧, 밤 새운다고 일 잘하냐."

Q씨는 7월부터 국감을 준비했다. 추석을 반납한 게 어디 한두 해인가. 보통 10월 4일이 국감시작인데 하필 추석은 꼭 그 앞에 있다. 이번엔 피감기관만 30곳. 1곳당 적게는 2개, 많게는 10개씩 질의서를 만든다. 국회 행정실에서 기초자료를 받고, 지난해 국감 속기록과 서면질의서와 답변서, 신문 스크랩을 훑는데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질의서의 통계 하나하나, 대조할 만한 해외 사례를 찾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만 꼭 필요한 추가자료를 피감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피감기관은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개인신상정보니 대외비니 말들이 많다. 피감기관의 상대편에 있는 시민단체나 제보자를 만나 술을 산 게 몇 번인가. 그런데 아직 큰 성과가 없다.

지난 밤, 영감(보좌진이 의원을 부르는 별칭)과 내일 있을 국감자료를 1회독했다. 의원은 또 "이거하고 이거하고는 통계하고 사진자료 따로 준비해놔. 파워포인트 쓸 수 있게 말이야"라고 말했다. 나가면서는 "(피감) 뒷골 당기는 그런 거 있잖아 어? 식은땀 줄줄 나도록 준비 잘 해봐"라는 말을 남기고 퇴근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있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나왔다.

다선(多選) 의원실은 좋겠다고 툴툴거리며 Q씨는 승용차에 오른다. 그들은 굵직굵직한 정책현안을 주로 챙긴다. 국감 잘했다고 4선, 5선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재선 이하 의원실은 '한 방'이 중요하다. 지명도가 약하니까. '국감 스타' 되는 게 쉽지 않다. 지역 현안도 챙겨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차 시동 걸기가 겁났다.

Q씨는 다른 의원실과 신경전을 벌인 탓에 어깻죽지가 뻐근했다. 괜찮은 것 하나 건졌다고 생각했는데 딴 방이 먼저 보도자료를 냈다. 먹잇감을 두고 모두가 사냥을 벌이는데 누가 먼저 활을 쐈다고 나무랄 것은 없다. 대신 내일은 ○○신문 A기자와 점심을 해야겠다고 벼른다. 정론관(기자실) 앞에서 자리 싸움해가며 자료를 비치해도 신문이나 방송에 나가지 않으면 헛수고다. 기자들은 모른다. 자료 하나를 내기 위해 얼마나 피땀 나는 싸움을 하는지.

집에 도착했을 때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다녀갔다"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밥 한 번 먹자고 난리다. 어떻게 알았는지 영감의 질의 내용을 알아내서는 "적당히 해달라"고 로비하는 통에 국감 준비에 집중할 수가 없다. 시시때때로 찾아와 명함을 내민다. 누구누구 잘 안다며. 그래서 어쩌라고?

얼마 전 보좌진 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동남권 신공항은 말이야, 국토위 국방위 등 관련 상임위 의원들이 다각도로 밀어붙여야 해."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복지위하고 국토위, 지경위 쪽에서 담당해주고." 지역 의원들이 전략적으로 파고들어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국감을 만들자,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역 현안은 의원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힘을 모으자고 건설적으로 소주 한 병 시켰다. "졸속국감 말고 고급국감으로 가려면 감사원 감사 결과를 입법부에 넘겨주는 시스템이 돼야지 않겠어?" "그래, 그러면 불필요한 국감이 사라질 텐데 말이야." "맞아 맞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또 한 잔. "상시 국감은 안될까?" "누구 피 말릴 일 있냐? 피감기관은 행정이 마비될걸?" "뭐 새로운 거 없나?" "나는 한 건 했지 흐흐." 부러움 가득한 눈길이 한 보좌관에게 쏠린다. 매년 똑같은 얘기를 나누지만 달라질 게 없는 술자리가 무르익어갔다.

22일 국감이 끝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한 달 뒤 피감기관의 답변서가 오면 정리해서 영감한테 보고해야 한다. 답변서가 부실하기 일쑤라서 핑퐁게임이 시작된다. 하나라도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 Q씨는 쉬이 잠들 수 없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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