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는 과연 '허수아비'였을까
124대 일본 왕('천황')이자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히로히토. 히로히토는 강경한 우익 성향의 군부가 주도했던 태평양전쟁에서 허수아비 역할을 했고 종전 후에는 상징적 지위에 머물면서 심지어 평화를 설파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히로히토 평전, 근대 일본의 형성'은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뒤엎는 책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 허버트 빅스는 일왕 히로히토가 태어날 때부터 전제군주로 길러졌고 태평양전쟁에서도 누구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전쟁 책임 문제에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입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밝힌다.
히로히토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공세, 학살은 물론이고 미국에 맞선 전쟁의 거의 모든 사항을 장악하고 통제한 사실상의 전쟁 지도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종전 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냉전이라는 국제환경 덕분에 일본 우익과 미국은 히로히토에게 유약하고 유명무실한 천황이라는 가면을 씌워 태평양전쟁에서 히로히토라는 이름을 없애려 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보는 히로히토는 냉혹하고 잔인한 군주였다. 만주사변을 용인했고 독가스 등 화학무기 사용을 재가했으며 중국 몇몇 도시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아울러 중국과 한국 이외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진두지휘했다고 지적한다. 또 타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지위를 결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점에서 그는 근대의 군주 가운데 가장 솔직하지 못했던 인물 축에 들었다고 혹평했다. 종전 후 히로히토가 평화주의자로 변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를 설파하고 다닌 것은 여론 조작의 결과였다는 것.
지은이는 30년에 걸쳐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저술 활동을 펼치면서 미'일 양국에서 일본사를 강의해왔으며 2001년까지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빙햄튼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히로히토 평전'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쓰여진 역작이며 2001년도 퓰리처(논픽션 부문)상을 수상했다. 944쪽. 3만5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