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강 잡지 '헬스'(health)에서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해 화제가 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김치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금기 식품이나 다름없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김치가 공식음식으로 지정되고 불과 20년 사이에 세계적인 건강식품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먼저 상품화하여 국제식품기구에 등록을 시도한 일본 '기무치'의 공세를 물리치고.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된 것은 한국의 김치 외에 일본의 콩류 식품(두부, 콩나물, 된장 등)과 인도의 렌틸콩, 그리스의 요구르트, 스페인의 올리브유이다. 5대 식품을 보면 건강식품의 경향을 알 수 있다. 육식은 건강식품이 아니다. 건강식품은 요구르트를 제외하면 모두 식물성 식품, 곧 채식에 속한다. 그리고 콩류 식품과 발효 식품이 으뜸이다. 그러므로 굳이 위의 식품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채식을 하고 콩류와 발효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건강식품을 가진 그리스와 스페인, 인도 등은 모두 역사적 전통이 깊고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그리스는 유럽인들의 문화적 뿌리이자 정신적 고향이며 스페인은 그리스와 쌍벽을 이루며 유럽 문화의 전통을 널리 확산시킨 나라이다. 인도는 동양 문화의 성지로서 유럽인들이 동경하던 나라였다. 따라서 역사적 전통이 뚜렷한 나라가 곧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문화를 창출한 셈이다. 한국의 김치도 오랜 문화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콩류 식품 또한 사실상 한국이 원조라는 점이다. 콩의 원산지가 한국일 뿐 아니라 두부나 콩나물, 된장 모두 한국 전통 식품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렌틸콩도 인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팔에도 있다. 올리브유도 스페인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모든 국가에 많이 난다. 요구르트도 그리스 고유의 식품이 아니다. 그러나 김치는 한국 고유의 식품이다. 그런 점에서 5대 식품 가운데도 한국의 김치가 단연 으뜸이다.
김치가 고대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김치 문화도 역사적 변동을 겪어왔다. 지금처럼 속이 찬 배추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반세기를 넘지 않는다. 그 이전의 배추 품종은 속이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추가 전래되기 전까지는 백김치를 먹었다. 정부인 장 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는 백김치 담그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17세기 중엽까지 고춧가루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가라오케가 한국에 와서 노래방으로 더 활성화되었듯이 문화의 원산지가 아니라 그 경향성이 더 문제가 된다. 고추와 통배추가 만나서 지금과 같은 배추김치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이전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무김치는 깍두기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더군다나 과거에는 겨울철에만 김치를 먹었지만 지금은 사철 김치를 먹게 되었다. 이제 배추김치 없이는 한 끼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배추값 폭등으로 김치 대란이 일어난 까닭도 이러한 식문화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
강변에 에멜무지로 짓는 농사는 주로 배추 농사이다. 모래땅에 배추가 잘 자라는 까닭이다. 따라서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배추값 폭등을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앞으로 김치는 세계적인 건강식품으로 국제사회에 수출해야 할 터인데 국내 수요조차 가늠하지 못해 이 지경이니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배추값이 다락같이 올라도 실제로 배추 농사를 지은 농민들에게는 별 이익이 없다는 점이다. 유통업자에 의한 매점매석과 입도선매로 농민들은 여전히 예전 배추값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작 농민들은 한여름 동안 뼈 빠지게 배추 농사를 짓고도 배추가 없어서 김치를 굶을 판이다. 제 손으로 가꾼 배추를 포기당 1천 원에 입도선매하고 시장에 가서 1만 5천 원짜리 배추를 사 먹게 된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 건축 현장에서 평생 품을 팔며 수없이 많은 아파트를 지어도 제 집 한 채 가지지 못하는 건축 일꾼들의 사정도 이와 같다. 이것이 바로 시장사회의 모순이다.
임재해(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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