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놈의 날씨가 배추 다 망쳤어" 농민들의 한숨

입력 2010-10-01 10:28:31

"비 다음날 땡볕, 이러니… " 배추값 폭등

봉화군 춘양면 배추 재배농 임병도 씨가 누렇게 변한 배추를 뽑아들고 작황 부진을 호소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봉화군 춘양면 배추 재배농 임병도 씨가 누렇게 변한 배추를 뽑아들고 작황 부진을 호소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놈의 날씨 때문에 배추가 성한 게 없어요. 올 김장배추도 구경하기 힘들 것입니다."

30일 오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마을. 경북 최대 고랭지 배추 재배지인 이곳에서 배추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대다수 밭에는 가을배추 대신 당귀나 약초 등이 자라고 있다. 올여름 내내 이어진 비와 뜨거운 날씨 탓에 여름배추와 가을배추가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상당수가 녹아버리는 등 흉작 피해를 입자 농민들이 대체 작목으로 당귀나 약초 재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사는 임병도(65) 씨는 "많은 비와 뜨거운 날씨 탓에 배추 농사가 흉년이 들어 엉망이 됐다"며 "예년 같으면 한 마지기(300평)당 3천 포기가 생산됐지만 올해는 제대로 된 배추가 1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 장사꾼들에게 오히려 미안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이어 "불량 배추가 많아 장사꾼들도 상당수 손해를 봤을 것"이라며 "올겨울 김장배추도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마을의 배추 밭에서는 상당수가 대체 작물이 자라고 있고, 드문드문 보이는 배추밭조차도 작황이 좋지 않아 듬성듬성 바닥의 흙을 드러내고 있다. 봉화군 전체 고랭지 배추밭 130ha 가운데 현재 배추를 재배하고 있는 경작지는 30ha로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임 씨는 "7월에 심은 여름배추는 많은 비와 뜨거운 날씨 탓에 다 녹아내려 농사를 망쳤고 8월 중순쯤 심은 가을배추도 비와 뜨거운 날씨로 모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작황이 좋지 않다"며 "그나마 뿌리를 내린 배추들은 배추농사가 잘 안 되는 8월 말이나 9월 초순에 심은 것들"이라며 허탈해 했다.

봉화군농업기술센터 김성용 경제작물 담당은 "육묘장에서 본포(밭)에 옮겨 심을 시기에 잦은 강우와 고온 현상으로 활착률이 크게 떨어져 배추 작황이 부진했다"며 "자칫하면 올겨울 김장배추 대란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본격 출하를 앞두고 있는 안동시 풍산읍 하리 등 안동의 가을배추 단지에서도 예년에 비해 생육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게 농민들의 이구동성이다.

배추 생산농 김경환(67·풍산읍 하리) 씨는 "추석을 전후해 태풍과 잦은 비로 배추 생육이 예년에 비해 나빠졌다"며 "이 상태라면 지난해 660㎡(200평)당 2천300여 포기를 생산했으나 올해의 경우 30% 정도 수확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동지역 배추재배 농민들과 유통 관계자들은 김장배추 밭떼기 가격이 지난해 평균 10포기 정도 수확되는 3.3㎡(1평)당 4천200~5천원 선에 거래되던 것이 올해는 7천500~1만원 정도 거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배추값 강세가 지속될 것이란 게 중론이지만 김장용 가을배추와 무가 본격 출하되는 10월 하순을 지나면서 지금보다는 가격이 낮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0월에도 배추 가격 강세는 유지될 것이지만 김장철에는 지금 시세보다 40∼60%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공급물량 부족으로 작년보다는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원 한 관계자는 "배추 가격이 연말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큰 만큼 내년 초에 출하될 월동 무·배추를 올해 내에 앞당겨 출하하는 것이 산지 농가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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