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의 계절, 승마 체험 나선 기자
승마는 예절이 반, 에티켓은 필수
승마장에서는 절대 뛰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말들은 겁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공격당하는 줄 알고 방어적으로 도망을 치거나, 기승자가 낙마할 수 있다. 또 말들의 뒤에 서면 매우 위험하다. 말의 엉덩이를 만지거나 꼬리를 건드리면서 뒤로 돌아가면 말들이 사람을 인식하기 때문에 대개 안전하지만 슬그머니 말 뒤에 숨어 들어가면 말들이 놀라 뒷발로 찰 수 있다.
승마는 예절이 절반인 운동이다. 승마장을 찾을 때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반갑게 인사하라'는 말이 있다. 기승자는 물론 말들에게도 살짝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기본 예절이다. 특히 '저기 저 말은 왜 저리 삐쩍 말랐어?'라며 말을 무시하거나 '이게 운동이 되겠어? 골프가 더 낫지' 하는 말도 삼가야 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푸른 하늘 아래서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때마침 승마가 고급스럽고 이색적인 취미를 갖고 싶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레포츠로 변신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무료 승마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다 비용을 확 낮춘 승마장도 곳곳에 생겨나 저렴하게 승마를 즐길 수 있다. 이들 승마장에서는 기존 가격의 절반인 월 평균 30만원 정도로 승마를 즐길 수 있어 승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영천 운주산에 위치한 운주산 승마장을 찾았다. 짙은 녹음과 소나무 향기 가득한 운주산 자연휴양림 속에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적당한 곳이었다.
"승마는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좋은 운동인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심데이~."
승마 체험을 준비해주던 이광철 영천시 말산업 육성담당은 승마는 부부가 함께 즐기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그가 묘한 웃음을 날리며 설명했다. "승마를 하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애인에게 절대 차이지 않지요." 듣고 나니 무슨 말인지 대충 감이 왔다. 승마는 허벅지 안쪽 살과 뱃살을 동시에 뺄 수 있는 운동인데다 평소 잘 안 쓰던 근육(일명 승마근육)을 쓰기 때문에 운동효과가 극대화되고 결국 이는 부부나 연인 금실로 이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더구나 말을 탈 때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므로 비뚤어진 체형교정에도 그만이다. 이런 이유로 승마 강습을 받는 사람들 중 여성들도 많다고 했다.
승마의 장점에 대해 10여 분 동안 설명을 듣고 나니 말 타기가 다소 무서웠던 기자의 마음도 급해진다. 당장 타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말이 워낙 민감하고 조심성이 많아 준비과정이 다른 레포츠에 비해 훨씬 까다로웠다. 우선 복장부터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머리에 꽉 끼는 헬멧과 장갑은 물론 채찍과 승마부츠도 필수다. 야외로 나갈 경우에는 강렬한 햇살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릴 수 있으므로 썬 블록도 필요하다. 특히 신발 위에 덧신는 챕은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등자에 발이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약 챕을 착용하지 않고 말에 올랐다가 낙마를 할 경우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발이 걸려 말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승마장에서 빌려주는 복장으로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나니 그제야 타야 할 말과 인사를 하란다. 말이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서 말과의 친분 쌓기가 중요하다는 이경숙 수석교관의 설명이었다.
승마코스 한쪽에서 말을 기다리고 있자니 꼭 첫 데이트에서 이성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렌다. 저 멀리 승마장 입구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말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마하 플러스', 나이는 여섯 살로 경기용 말로 한껏 주가를 올리다 전성기가 지나 이곳으로 왔다. 한물간 말이었지만 그래도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수석교관이 시키는 대로 첫 인사를 나눴다. 나지막하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나를 소개한 뒤 손으로 갈기를 쓰다듬으며 "잘 부탁한다"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몇 번이나 이를 반복하자 드디어 뚱하던 녀석의 표정이 조금 풀리며 힐끗 눈길을 준다.
'이제야 나를 허락하는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안장에 올라앉으니 살짝 겁이 난다. 어른 키 높이 정도지만 그렇게 높아 보일 수 없다. 높은 시야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고삐를 잡은 교관은 "편안한 마음으로 몸에 힘을 빼고 가슴을 펴고 시선은 전방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승자의 밸런스를 말이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부영화에서처럼 고삐를 잡아채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을 살짝 이동하는 것만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 말 위에서는 교관의 말처럼 되지 않았다. 자꾸 말에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말과 호흡이 맞지 않아 엉덩이에 불이 난다. '사람을 태우는 말이 힘들지 내가 힘들겠어'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10분 정도 타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고삐를 잡은 손아귀에 자꾸 힘이 빠진다. 30여 분 승강이를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구보를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말의 반동에 몸을 맞출 수 있게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인마일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푸른 초원을 달리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갑갑한 실내 승마장을 벗어나 야외로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교관이 한사코 말린다. 보통 6개월 정도 꾸준히 승마연습을 하고 나서야 야외로 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더구나 말과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승마체험장이 먹이를 주고 만지기도 하면서 말과 친해지도록 하는 사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다. 더구나 야외에서는 말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갑자기 돌출 행동으로 인해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말과 함께 가을 들녘을 멋지게 달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을 탔다는 것만으로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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