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위헌성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묻기로 했다. 경기도내 대학 설립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규제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서울, 인천, 경기지역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도 때맞추어 국토해양위원회에 계류 중인 '수도권 계획과 관리에 관한 법률안'의 정기국회 처리를 공언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수도권정비계획법 무력화 시도이자 대수도론 실현을 위한 막무가내 터닦기이다.
이러한 수도권 정치인과 자치단체 책임자들의 움직임은 외양상 너무나 그럴싸해서 오로지 잃어버렸던 지방 권한을 되찾으려는 무욕의 시도처럼 보인다. 그동안 서울, 경기, 인천 등 소위 수도권 지방은 자신들의 현안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에 주도권을 맡겨왔다. 이제 해당 지역 시장'도지사가 수도권 정책을 직접 이끌어갈 수 있도록 주체를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이니 영남이든 호남이든 이를 무조건 나무라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내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정치인들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이슈화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짐작건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위헌성을 제기하고 대체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목적은 세종시 원안 확정에 따라 다소 불안해진 수도권 지역 민심을 자극하면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도 적당히 부추기는 것일 듯싶다. 더욱이 차기 총선과 관련해 수도권 여당 의원들의 입지가 꽤 어려워지리라는 예측을 고려할 때, 장차 얼마나 집요하게 정치 쟁점화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는 결국 소수 정치인들의 개인적 욕심을 앞세운 처사일 뿐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민의의 대변자로서 그다지 떳떳한 행동은 아니다.
설사 조그마한 진정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수도권 정치인들의 주요 요구 사항은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 및 대체입법을 통한 권역 개편, 규제완화 특별구역 확대, 대학 설립 허용 등이다. 만일 이러한 내용이 현실화될 경우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규제 수단조차 사라진 수도권은 블랙홀 구실을 해서 비수도권 기업, 대학, 인적자원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일 게 뻔하다.
서울, 인천, 경기에는 기업 신'증설과 이전이 늘어나고, 그러잖아도 지나치게 복잡할 정도로 번듯한 부자 동네에 돈과 사람이 더 몰려들 것이다. 수도권에 새로 들어설 기업은 주로 첨단, 녹색 업종일 텐데, 이는 자생적 발전방안을 모색 중인 비수도권 입장에서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특히 대구경북은 IT융복합, 그린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미래 신성장동력 육성전략을 세워뒀으니 이중삼중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온갖 유리한 조건에다 규제까지 벗어던진 수도권을 마다하고 이곳 구미나 동해안권에 선뜻 투자할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앞일을 이 정도까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면, 몇몇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수도권 규제완화를 시끄럽게 떠들고 억지 부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런 식의 일방적 주장과 논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 국토 관련 계획 수정을 연중행사처럼 반복해도 곤란하다. 이미 수도권 규제는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거의 유명무실하다시피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 고른 지역 발전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대수도론에 매달리는 대신, 수도권과 비수도권 상생의 초기 조건을 어떻게 갖춰나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초기 조건 강화의 핵심은 월등한 수도권의 여건에 버금갈 만큼 비수도권 광역인프라를 조기 구축해서 글로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오늘날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국가 정책방향이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다.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주듯이 여기에는 다수의 수도권 주민들까지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대구경북을 고향으로 둔 일부 출향인사들의 이해 부족이다. 당장 서울과 경기도에서 국가균형발전의 시대정신을 망각하고, 가장 소리 높여 수도권 규제완화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이 지역 출신이 많다. 대구경북의 힘겨운 처지를 생각할 때 섭섭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연고를 따지거나 감상에 젖지는 않을 테니 감성적인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구경북 출신 서울 사람들'도 이번 한가위를 맞아 찾은 고향길에서 암담한 비수도권 지방의 현실과 안 그래도 좁은 국토가 왜곡되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기를 바란다. 누가 뭐라고 흔들어도 지역이 살아나야 대한민국이 산다. 지역이 희망이다.
오창균(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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