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대구파티마병원 흉부외과 허동명 과장

입력 2010-09-20 07:10:16

한밤 응겁전화 서울서 대구로…며칠후 과속스티커 줄폭탄

대구파티마병원 흉부외과 허동명 과장은
대구파티마병원 흉부외과 허동명 과장은 '환자가 믿어주고 의사가 인정하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폐는 약 10억 개에 이르는 스펀지 모양의 작은 폐포(허파꽈리)가 흉막에 둘러싸인 장기다. 폐포와 흉막 사이를 흉강이라고 부르는데, 폐포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빠져나와 흉강에 고일 때 이를 '기흉'이라고 한다. 폐 질환이나 사고로 폐가 손상을 입었을 때 발생하기도 하지만 폐 위쪽 부위에 작은 공기주머니가 생기는 '자연 기흉'이 많다. 기흉이 생기면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느낀다. 통증은 대개 하루 만에 사라지고, 호흡곤란도 운동할 때 약간 불편한 정도다. 하지만 폐 질환이 있거나 큰 기흉이라면 호흡곤란이 심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흉강 내에 공기가 많이 모여서 심장 주위의 혈액 순환을 방해하는 긴장성 기흉의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기흉 수술의 대표 주자

대구파티마병원 흉부외과 허동명(49) 과장은 심장과 폐에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을 다루지만 특히 자연 기흉 치료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 주자다. 1996년 처음 흉부외과를 개설하면서 부임했을 때 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심장 및 폐 질환 수술만 연간 350~400여 건에 이른다. 기흉 환자만 연간 150~200명이 찾고, 이들 중 100명가량이 수술을 받는다.

기흉은 재발 위험이 높다. 처음 기흉이 생기면 작은 관을 폐에 삽입해서 공기를 빼내는데, 저절로 상처가 아물고 폐가 원래 모양대로 팽창한다. 하지만 대개는 공기주머니를 잘라내는 '폐기포 절제술'을 해야 한다. 공기주머니를 절제하지 않을 경우, 재발 확률은 50%에 이른다. 문제는 폐기포 절제술을 받아도 재발률이 10%에 이른다는 것. 하지만 파티마병원은 이를 절반으로 줄였다.

2000년 4월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시술 덕분이다. 1999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할 당시, 기흉 재발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시술을 접하게 된다. 원래 기흉 재발을 막는 방법으로 '흉막 유착술'이 가장 흔하게 쓰였다. 하지만 수술 후 가슴통증이 심하고, 출혈 및 가슴부위의 불편감이 오고, 나중에 다른 흉부 수술을 받을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재발률도 크게 줄이지 못했다.

"피브린 글루(Fibrin Glue)라는 일종의 단백질 풀을 기흉 발생이 우려되는 부위에 뿌려주는 시술을 처음 도입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시술인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병원의 기흉 환자는 이르면 하루 만에도 퇴원합니다. 대개 수술 후 1, 2일 만에 퇴원하죠." 국내 최초로 시도된 이 시술은 한국흉부외과 학회에도 보고됐고,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2007년부터 관련 시술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구파티마병원을 비롯해 서울대의대 분당서울병원, 고려대의대 안암병원, 연세대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등 10여 개 병원들이 함께한다. 조만간 1천 례에 이르는 시술 결과를 종합해 학회 등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어린이는 천사입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물었더니 선뜻 한 어린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남자 어린이였는데, 폐렴이 심해져서 흉막에 고름이 고이고 심지어 피부 밖으로 고름이 새어나올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단계. 이처럼 안타까운 지경에 이른 까닭은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 심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간경화로 입원해 있었고, 파출부를 하며 가계를 꾸리는 어머니는 잦은 가정 폭력 탓에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정신이 흐렸다. 중학생인 누나 역시 부모의 보살핌과는 거리가 멀었다.

"흉부외과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다 보니 안팎으로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도 치료비가 확보돼 수술을 받을 수 있었죠."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식사를 받기 무섭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아픈 중에도 거의 끼니를 챙기지 못한 탓이다. 그러던 아이가 이튿날부터 갑자기 밥을 먹지 않았다. 굶고 있을 누나 생각에 밥을 넘기지 못한 것이다. 병원 측의 배려로 2인분의 환자식이 공급됐다. 학교를 마친 누나는 병원에 와서 저녁을 먹고 동생과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을 먹고 등교할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퇴원할 때까지 폐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라면 다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폐가 100% 회복됐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허 과장은 "아이들은 천사입니다.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했다. 얼핏 스쳐가는 눈빛 속에서 그는 굶주리고 아파했을 아이를 떠올리는 듯했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해 전 동대구역에서 한 노숙자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왔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 그는 보호자 한 명 없는 환자를 위해 병원에 수술비 지원을 적극 요청했고, 병원에서 운영 중인 '성모자선회'를 통하여 수술비를 지원받았다.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해

매일 12시간 넘게 병원에서 보내는 그는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외과의사, 특히 흉부외과 의사는 24시간 전쟁 중입니다. 언제 응급환자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죠." 밤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응급 환자 때문에 가족들과 오붓한 한때를 보내기도 쉽잖다. 올해 서울대에 진학한 큰아들의 입학식에도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입학식 전날 서울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갑자기 새벽 1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긴 50대 여성 환자인데 수술 시간을 늦추면 생명이 위독했죠.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전화를 끊자마자 차를 몰고 대구로 왔습니다. 새벽 4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죠. 수술은 성공했는데, 과속 스티커가 마구 날아오더군요."

의사로서 보다 편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명을 구하는 흉부외과의 '드라마틱'한 긴박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보다 의미있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재미는 곧 '보람'이다. "의사를 하면 밥은 먹고 살잖습니까. 제가 하고픈 일을 하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쑥스럽다는 듯이 작은 배지(badge) 하나를 꺼내 보였다. 파티마병원 로고가 새겨진 순금 배지. 2006년 병원 개원 50주년 기념으로 직원들이 뽑은 '베스트 닥터'로 선정된 뒤 받은 선물이다. "다른 어떤 상이나 표창을 받았을 때보다 함께 일하는 병원 가족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고 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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