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 칠월' '둥둥 팔월'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 공기가 삽상해지는 이맘때쯤 바람결에 묻어오는 어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생의 짬짬이 토해내시던 가사의 한 구절이지 싶다. 그 마지막 구절은 항상 '명절 누가 내놨노'로 탄식조의 사설을 달아 끝맺음을 한다. 어정거리는 중에 칠월이 가고 바빠 둥둥거리며 팔월을 보낸다는 그 언어의 뒷면에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간단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덧없음과 삶의 고달픔을 은근슬쩍 비추는 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다.
한가위는 설(元旦)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보통 추석이라고 불리고 중추절이라고도 하는 한가위의 '한'자는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의 옛말로 정월대보름과 함께 연중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때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명절과 절기를 고루 헤아리며 시절을 알리고, 때에 맞는 갖은 별식과 놀이를 만들어 즐겼다. 농경생활의 건조한 식탁과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발상은 조상들의 멋이요 풍류다.
신에게 풍년을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지내던 농경시대의 명절이 유교 문화를 접하면서는 조상께 드리는 보은(報恩)의 의미로, 세시풍속이 퇴색해 가는 현대사회에서는 흩어져 사는 혈연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협력하고 화목을 다지는 구실을 하고 있다. 묵혀둔 산소를 찾아 벌초도 하고 삶에 잡혀 잠시 잊고 지내던 조상의 은덕을 다시 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설이 한 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명절이라면 한가위는 나눔의 명절이다. 농부의 땀이 오곡백과로 무르익어 들판을 가득 채우면 넉넉한 인정도 함지박에 소복소복 쌓여 담을 넘나든다. 5월의 농부가 나눔의 신선이 되어 보는 것이 8월 한가위다.
서양 사람들에게 어둠의 의미로, 죽음의 이미지로 표현되던 것과는 달리 월력을 사용하던 농경 민족에게 달은 희망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소망을 담아 바라보던, 경원의 대상이었다. 명절의 흥취와 놀이와 별식의 나눔이 없었다면 매월 한 차례 떠오르는 덩그런 보름달이 무슨 별다른 의미가 있겠는가.
늦더위에 고물가로 몸은 뜨거워도 마음은 썰렁하다. 경제지표 수치에 아랑곳없이 서민층은 언제나 불황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마음 밑자리에 찬바람이 돈다. 이럴 때일수록 배려니 양보니 하는 미덕은 뒷자리로 밀려나기 일쑤다. 귀향하는 손이 좀 가벼우면 어떤가.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와 환한 미소, 그것은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끈이다. 보름달처럼 둥글고 달빛처럼 환하고 정겨운 세상, 일 년 삼백예순다섯 날이 한가위만 같았으면. 둥둥거리며 팔월이 간다.
박헬레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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