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도주로, 팔현습지 걸어서 금호강 건넜다"
"후삼국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팔공산 공산전투에서 패배하자 율하천을 따라 내려와 팔현습지 부근에서 금호강을 도보로 건넜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형도(조선총독부, 1918년 제작)를 근거로 현지 답사를 통해 왕건이 금호강을 건너 도주하기 위해서는 팔현습지가 도강하기에 최적지라는 주장을 폈다.
왕건의 도주로 중 공산전투에서 반야월까지의 도주 경로는 대체로 이설이 없다. 무태→연경→지묘동→미대동→동화사→백안동→능성동→은해사→나팔고개→동화천→왕산→파군재→봉무동→불로동→평광동→시랑이→ 안심→반야월 코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왕건의 도주로 중 현재 반야월 이후부터 앞산 큰골의 은적사에 이르는 도주로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금호강을 건너기 전 동구 평광동 시랑이마을에서 산을 넘어 안심과 반야월로 가기 위해서는 동구 매여동의 율하천을 건너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율하천과 금호강과 합류되는 팔현습지 부근이 금호강 도강에 가장 편리한 노선으로 봐야 하죠."
전 교수는 왕건이 배를 이용한 금호강 도강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1910년 지형도를 볼 때 반야월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터는 동촌과 북구 검단동 부근이다. 하지만 이곳은 견훤 군대의 세력권이어서 왕건이 배를 이용해 금호강을 건넜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
도주 당시 늦가을 또는 초겨울의 갈수기여서 금호강 수심은 얕았을 것이다. 따라서 왕건은 비교적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지금의 동구 고모동 팔현마을 부근의 습지 포인트바(퇴적지형)로 금호강을 건넜을 것으로 전 교수는 보고 있다.
"금호강을 건넌 후 견훤의 추격에서 벗어난 왕건은 비교적 쉽고 편한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커요. 이러한 가정에서 판단한다면 고려시대에도 주요 교통기능을 담당했던 범어네거리가 왕건 도주로의 중심 경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후 왕건은 앞산으로 숨어들어 큰골의 은적사, 안지랑골의 안일사와 왕굴, 달비골의 임휴사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고려로 돌아갈 기회만 엿보았을 것입니다."
전 교수는 팔현마을은 금호강변에 녹아 있는 또 다른 왕건의 흔적인 무태(서변동)·동화천(살내)·불로천 등과 함께 흥미로운 역사적 이야기를 구성해낼 수 있는 생태환경과 문화역사적 요소를 갖춘 곳으로 보고 있다.
전 교수는 또 서거정의 '대구십영'중 제1영의 금호범주에 등장하는 나루터는 검단나루터가 아니라 복현나루터라고 확신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구부와 팔공산 기슭의 해안현을 연결해주던 금호강의 나루터로는 검단나루터와 복현나루터가 있다. 검단나루터는 북구 금호제일교 바로 윗부분과 북구 동변동을 이어주는 나루터이고, 복현나루터는 불로천이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부분으로부터 약 2㎞ 금호강 상류 복현중고 앞 강변과 금호강 건너편의 불로초교 앞 강변을 연결해주는 나루터다.
"금호범주의 풍광을 살피기 위해서는 근처에 높은 곳이 있어야 하고, 서거정이 팔공산 일대를 자주 왕래할 때 쉽게 접근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복현나루터가 금호범주에 등장하는 나루터가 확실합니다."
전 교수는 신천·금호강변 문화지형 조사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16년간 신천과 금호강변을 걸어서 샅샅이 훑어 찾아낸 문화지형만도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신천변에서는 선사시대인의 생활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바위그늘과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지로 추정되는 판상절리지형, 대구 유일의 하식동굴 등 문화지형 경관이 집중돼 있어요. 금호강변에도 팔현습지·검단나루터와 복현나루터·팔달진나루터·사문진나루터 포인트바, 하식애 등 문화지형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그는 신천변은 문화·역사·생태환경 체험을 위한 학습장 조성을, 금호강변은 자전거·도보·유람선을 이용한 문화지형 탐방로를 만들면 좋은 스토리텔링 공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지역지리학회 학회장에 선임된 전 교수는 "지자체와 연계해 관·학 공동 지역연구 및 지리관련 번역서를 내는 데 집중하겠다"며 "해외 학술답사도 추진, 세계 지역 연구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