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의 길 택한 남편 따라…부인도 '義婦의 길'로
'부부의 의리와 군신의 의리는 하나.'
1920년 12월 19일(음력) 저녁 이명우와 권성 부부는 함께 독을 마셨다. 1918년 12월 20일(음력)에 서거한 광무황제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이다. 이명우는 그날 의(義)의 길을 따라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길에 부인 권성(1868~1920)이 함께했다.
이들은 죽음에 앞서 유서를 남겼다. 이명우는 '비통사'(悲痛辭)와 '경고'(警告), '유계'(遺戒), '분사'(憤辭)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부인 권성은 다섯 통의 한글 유서를 남겼다. 세 아들과 친정 동생, 시숙부와 시숙, 두 며느리에게 주는 글이다. 모두 '성재옹유고'(誠齋翁遺稿)에 실려있다.
이명우의 죽음에는 분함과 부끄러움이 자리했다. 그는 '비통사'에서 "나라를 잃고 10여 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뜻을 이루려 한다"고 밝혔다. 나라 잃은 부끄러움에 임금 잃은 부끄러움이 더해졌으니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남편의 길에 부인 권성이 함께했다. 권성은 세 아들에게 "너의 아버님께서 평생에 의리가 많아 이제 뜻을 이루려 하니 나도 같이 따르려 한다. 부부의 의리는 군신의 의리와 같으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는 글을 남겼다. 17세에 결혼해 35년간 함께했던 남편을 따른 것이다.
권성은 대의를 따르면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액운과 불운을 다 보내고, 좋은 바람 다시 불어 태평세상 되거든 부귀영화 되길 한없이 축원한다"는 서러운 마지막 희망을 담아 유서를 맺었다. 권성은 그렇게 '의부(義婦)의 길'을 갔다.
100년 전, 나라 잃은 그해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많은 기억을 쏟아낸다. 그 기억 가운데 이명우와 권성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들이 '참사람의 길' '참관계 맺음'에 답을 주기 때문이다. 보다 높은 가치와 진정성이 담긴 관계 맺음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강윤정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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