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23)] KTX전국망 구축에 앞서야 할 정부정책

입력 2010-09-14 07:14:01

이달 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회의에서 '전국 KTX 90분 시대 열린다'를 골자로 하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2020년까지 주요 거점도시들이 KTX망을 통해 서울에서 1시간 30분대로 연결되어 전국이 사실상 단일 도시권으로 통합되게 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 노선을 살펴보면, 금년 11월 완전 개통예정인 서울-부산을 포함해서 서울-광주-목포, 서울-인천공항, 서울-춘천-속초, 서울-대전-거제의 KTX 노선이 신설되고, 포항'마산'전주'순천 지역은 기존 경부'호남고속철도와 연계해 KTX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경기도와 서울도심을 20분 이내에 연결하는 지하고속철도(GTX) 3개 노선 건설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녹색성장시대를 맞이하여 앞으로 10년 내에 고속도로 대신에 전국교통망을 고속철도로 대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1392년 조선왕조 수립 이후 600여 년 동안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진실이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지방도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서울에 빨리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지방에서 서울(한양)가는 길은 '과거길'이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경부선'경의선'경원선이 서울과 지방도시들을 연결해주었다. 1960년대 이후의 개발연대에는 경인(서울-인천)'경부(서울-부산)'호남(서울-광주)'영동(서울-강릉) 등의 고속도로가 서울과 지방도시를 연결해주는 수단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고속도로 정체가 심각해지다 보니, 서울에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지방의 지도층들은 군사공항을 활용하여 민항기를 서울 김포공항과 연결하는 항공편을 선호하였다. 그러다가 2004년 서울-대구 간 경부고속철도 1단계가 개통되면서, KTX로 비행기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서울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구 이외의 타 지방도시들도 서울과의 KTX연결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을 위하여 GTX건설(14조원 소요)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KTX고속철도망이 전국적으로 구축되면 실질적인 지역균형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그럴까? 서울-대구 구간을 1시간 40분에 주행하는 KTX로 대구사람들은 열심히 서울을 왕래하고 있다. 공무원이나 학자들은 대개 회의 차 서울에 가지만, 부유층들은 쇼핑하고, 병원진료 받고, 자녀들을 강남의 학원까지 보내면서 서울생활을 즐기고 있다. 반면 KTX시대 6년이 지난 오늘날의 대구는 대기업 하나 유치된 것 없고, 경제상황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TX 덕분에 대구경제가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KTX가 지방 돈을 서울로 유출시킨다는 '빨대효과'(straw effect)만 입증해주었다.

모름지기 길이란 양방(two-way) 통행을 위해 있다. 조선시대, '과거길'은 지방의 선비가 주로 이용하였고, 개발연대의 고속도로는 수출입물자를 실어 나르는 역할이 주 임무였다. 90년대의 항공편은 지방의 지도층들(공무원'기업인'교수)이 서울 가서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한시라도 빨리 얻어내거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길은 양방향으로 나있는데 서울로 가는 한쪽(one-way) 길만 주로 사용하다 보니,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의 수도권집중 국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볼 때 '전국 90분대 KTX' 라는 초고속 대량교통수단이 구축될 경우, 지방이 가진 마지막 자산까지 서울이 싹쓸이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길을 닦을 때는 목적이 있어야한다. 목적이 없고 수단만 있는 정책은 성공할 수가 없다. 정부는 97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되는 KTX망 구축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서울이 가진 지식'자본'기술 등을 KTX에 실어 보냄으로써 지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지방육성 방안부터 고민했어야만 했다.

지금 울산'포항'창원 등 지방산업도시의 대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지방도시에 산재해 있는 중소기업들은 첨단기술과 고급기술인력 부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방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육성함으로써, 지방대학 출신들이 수도권에 가지 않고도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종합적인 대책이 'KTX 90분 시대'보다 우선되어야 할 시급한 정부정책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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