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훅하는 열기. 태극기에 대한 예를 표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탈의실에 들어간다. 선(禪)이라는 글자가 희미한 젖은 도복에는 아직 어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맨살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곧 익숙해지고 도복 끈은 모두 안으로 집어 넣어 겉으로 어떤 매듭도 나오지 않게 한다.
이제 관절과 근육을 풀고, 대나무 4쪽의 죽도를 위 아래로 크게 후리기하고, 그리고 십수 년을 변함없이 해 온 기본동작을 한다. 머리! 손목! 허리! 를 크게 외치면서.
무릎을 꿇어 허리에는 갑상을, 가슴에는 갑을 입히고, 머리에는 '부동심(不動心)'이 선명한 무명 두건을 두르고, 그 위로 5㎏이나 나가는 호면을 쓰고,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을 낀다. 그리고 일어나 먼저 기다리는 예의를 갖춘다. 마주하여 예를 표하고 죽도 끝을 상대의 목으로 향하면 나 또한 느끼는 상대의 예리한 검기(劍氣). 두 눈은 먼 산을 향하듯이 상대의 눈을 향하고 고정시킨 눈동자에는 상대의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몸의 전체를 담는다.
실같은 몸의 움직임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한 치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 역시 섣부른 몸짓을 하지 않는다. 마음은 온몸에 퍼져 있어 작은 동요도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이 곧 몸이고 행동이다. 발바닥은 바닥에 붙이듯이 마루를 쓸고 간다. 흔들리는 마음을 간파하면 추호의 의심없이 과감히 몸을 던져야 한다. 머뭇거림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신(捨身). 그때 내딛는 발에는 1톤의 힘이 가해지고 죽도는 45도로 휘어진다. 승부는 순간적이다. 결과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는 예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무릎을 꿇고 호면을 벗고 짧은 묵상을 한다. 이때 찾아오는 마음의 고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고 당황하지 않으며(惑)),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놀라지 않고(驚)), 우월한 힘도 두려워하지 않고(懼), 의심하는 마음 또한 생기지 않도록(疑) 마음 수련이 된 것인지. 상호 머리를 바닥에 대어 예를 표함으로써 수련을 끝낸다.
2006년 12월 대만에서 개최된 제13회 세계 검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누르고 단체전 우승을 하였을 때 당시 천수이볜 대만 총통은 개회식에서 "검도의 역사는 한국과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로 시작하는 환영사를 하였다. 검도는 조선세법과 신라검법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무예이니 그 뿌리에 대한 오해는 없어야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난 지금, 오늘도 나는 무채색의 도복을 입는다. 몸으로 수련하고 마음으로 베기 위하여.
임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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