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맡겨둘 곳 없나요" 직장맘의 비애

입력 2010-09-04 07:16:58

직장보육시설 법규, 있으나 마나…대구 의무사업장 27곳 중 4곳만 운영

쌍둥이 형제를 둔 이은정 씨는 매일 대구은행 직장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긴다. 이 씨는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있어 육아 걱정을 덜었다.
쌍둥이 형제를 둔 이은정 씨는 매일 대구은행 직장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긴다. 이 씨는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있어 육아 걱정을 덜었다.

"쌍둥이라 육아 문제를 걱정했지만 직장보육시설에 맡기고 난 뒤부터는 육아 걱정이 사라졌어요."

대구은행 파동지점의 이은정(38) 대리는 36개월 쌍둥이 손태훈·태현 두 아이를 18개월 때부터 직장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18개월까지는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셨지만 쌍둥이라 계속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씨는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었다. 처음엔 집 주변 어린이집을 알아봤지만 '기저귀를 떼야 한다, 분유를 먹이는 아기는 받아주기 힘들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씨는 집과는 좀 떨어져 있지만 대구은행 직장어린이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0세부터 받아주고 운영 시간도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넉넉하다.

"친구들 중엔 출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가 많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복받은 거죠. 실내 인테리어도 친환경소재인데다 선생님들이 세심하게 돌봐줘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너무 좋아해요."

이 씨는 말 그대로 '복 받은' 직장여성이다. 대구에 이처럼 직장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13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구은행의 직장보육시설도 2008년에야 문을 열었다. 직원들의 자녀 106명을 맡고 있는 이 어린이집은 전국 은행권에서도 보기 드물게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 대구 직장보육시설, 외면하는 곳 많아

남녀고용평등법 및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500명 또는 상시 여성근로자가 300명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직장 내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가 없다는 것.

대구에 직장보육시설을 갖춰야 하는 의무사업장은 27곳. 이 가운데 겨우 4곳이 직장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민간 어린이집에 위탁하고 있는 사업장은 3곳, 어린이집 수당을 지원해주는 곳이 9곳이다. 의무사업장의 절반 가까운 11곳은 보육에 관한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대구에 직장보육시설이 적은 이유는 근로자 500인 이상 규모의 사업장 자체가 적은데다 공단지역에 위치한 회사의 경우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기 꺼린다는 것. 이 문제는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적으로 직장 내 보육시설에 대한 인식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직장보육시설은 전국에 320개로 전체 보육시설 수의 1%에 불과하다.

반면 일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직장보육시설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대구 여성들 가운데 자녀 양육 문제로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1%로 매우 높게 나왔다. 대구경북연구원이 2007년 7월 대구시민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결혼 및 자녀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다. 이 가운데 '항상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응답도 11.5%나 됐는데 맞벌이 여성에게 자녀양육은 일과 직장을 병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원을 배려하는 직장어린이집

직장보육시설 의무사업장인데도 보육에 관한 지원이 전무한 곳도 많지만 반대로 작은 규모지만 직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직장 내 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있는 곳이 9곳이다.

디딤어린이집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회사인 ㈜비앤디가 운영하는 디딤어린이집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전반에 친환경 교육을 적용하고 있다. 또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어린이집 프로그램 내용을 공유하고 매월 정산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교사 대 아이의 비율도 민간어린이집의 절반이다. 교육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디딤어린이집 김정자 시설장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 요즘 부쩍 셋째 낳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직장보육시설 덕분에 회사의 신뢰도는 크게 높아졌다. 협력업체와의 관계, 사업 확장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대교어린이집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학습지 교육을 위주로 하는 ㈜대교의 경우 여성 직원들이 많아 전국에 4개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도 민간어린이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투명한 편이다. 프로그램이 개방돼 언제든 어린이집 상황을 볼 수 있고 오후 10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직원들은 보육비도 할인되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있는 직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직장보육시설 활성화를 위한 과제

직장보육시설에 대한 경영자의 관심은 앞으로 과제로 남아있다. 설치에 대한 강제규정을 두기도 어렵다. 미설치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한다 해도 설치비용보다 적기 때문에 과징금 납부를 통해 이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

현재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할 때 지원도 적지 않다. 설치비 7억원의 융자가 가능하고 시설전환비용 2억원, 유구비품비 5천만원, 보육교사에 대한 지원도 있다. 하지만 인력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지역 대학들이 직장보육시설에 관심이 없어 여성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대학 내 보육시설을 갖춘 곳은 계명문화대뿐이다.

경북대여교수회장 박남희 미술학과 교수는 "대학 내에는 유아관련 교육학과, 간호학과 등 관련 학과에 전문인력들이 많은데다 기혼의 석·박사들이 많아 수요와 공급이 모두 다 충분한데도 대구와 인근 지역 대학들은 직장보육시설에 관심이 적다"고 지적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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