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포스코의 전신)은 우리 농업에 많은 신세를 졌다'고 하면 다소 의아해할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의 포스코를 일으킨 박태준 전 회장이 실토한 것이라고 과거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했던 이완주 씨는 그의 책 '라이스 워'에서 밝혔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정부는 제철 공장을 만들려 했으나 외국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자 1967년 포항종합제철소 사장으로 임명된 박 전 회장은 '묘안'을 떠올렸다. 농업 분야에 쓰기로 한 1억 2천70만 달러를 포함한 대일청구권 자금 5억 달러를 활용키로 생각한 것. 결국 박 전 회장의 계획은 이뤄졌고, 오늘날 포스코는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우리 산업 발달에 빼놓을 수 없는 공을 세우게 됐다. 우리 농업에 진 빚으로 포스코는 지금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셈이다.
포스코가 글로벌 기업으로 비약 성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포스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준 우리 농업의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우리의 주식이자 식량 안보의 핵심인 쌀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가을추수를 앞둔 요즘 황금 들녘이 심상찮다. 3년째 풍년이 이어지고 있고 국민 1인당 쌀 소비량(1999년 96.9㎏→2009년 74㎏)은 해마다 줄고 있다. 쌀값도 하락세여서 벌써부터 쌀값 대란을 걱정하고 있다.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쌀값 안정과 수급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생산량 가운데 소비 예상량을 제외하고도 정부가 추가로 더 사들이기로 하고 묵은 쌀을 가공용으로 처분하거나 쌀 소비를 촉진하고 논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거나 벼 대신 다른 작목을 심도록 유도해 쌀 생산을 줄이기로 하는 등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남아도는 쌀 문제로 정부는 해마다 대책을 되풀이하지만 농업 환경 및 국민 식생활 변화 등으로 어려움은 반복되고 있다. 또 쌀이 남아도는데도 여전히 굶고 있는 이웃들이 적잖고, 사회복지시설이나 무료 급식시설에서는 쌀 공급이 큰 부담이 되는 모순 상황도 되풀이되고 있다.
어려운 농업 환경을 감안하여 올해 공장 착공 40주년 회사 설립 42주년을 맞은 포스코가 '농업에 진 빚'을 갚는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 농업의 미래를 생각해서 박 전 회장이 포스코를 위해 '묘안'을 냈던 것처럼 또 다른 '묘안'에 대해 한 번 고민해 주면 어떨까 싶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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