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민어

입력 2010-09-02 11:01:10

단순소박한 조리로 최고의 맛 선사

본질이란 무엇인가.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을 흔히 본질이라 말한다. 그것은 변화하는 현상의 특질을 규정하는 지속적인 실재를 말하기도 하고,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가'란 규정을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말하려니 몹시 어렵다. 쉽게 본질을 찾아보자. 붓으로 빛을 찾아 캔버스에 색깔로 옮기는 작업, 소리를 찾아내 오선지에 콩나물로 옮기거나 건반을 두드리는 일, 렌즈로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포착해 내는 것, 혀끝으로 맛을 찾아내 즐기는 행위, 이렇게 무엇을 창조해 내는 것이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더하거나 뺄 필요 없는 '본질적인' 생선

별로 먹어 본 적이 없는 민어를 생각하면 맨 먼저 본질이란 낱말이 떠오른다. 민어는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없는 순진할 정도로 순수하고 담백한 생선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후부터 '민어는 참으로 본질적인 생선'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삼복에 상놈은 보신탕, 양반은 민어탕'이란 말이 있다. 그건 아마 고려 때부터 조선조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경상도 세력에 밀린 전라도 쪽에서 지어낸 말인 것 같다. 강원도와 경상도에 접해 있는 동해에는 민어가 나지 않고 서'남해를 물고 있는 전라도에는 명태가 잡히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생선 한 마리를 앞에 두고 '반상론'을 펼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그렇지만 7~9월 무더운 여름철에 제대로 된 민어회와 민어탕 맛을 보게 되면 "그게 그러네" 하고 약간씩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 여름 내내 어영부영하다가 개장국 한 그릇 먹지 못하고 '개 같은 여름'을 보내 상놈 반열에도 들지 못하지만 내게도 작은 꿈이 있다. 양반 음식이라 부르는 민어를 배가 부르도록 먹어 보는 것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어

민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산란기를 맞은 여름철에 몸에 기름이 오르면 민어는 제맛을 낸다. 씹는 맛을 즐기기 위해 두툼하게 썬 민어회는 워낙 맛이 좋아 별로 씹을 것도 없이 절로 넘어간다. 뼈를 삶은 물에 내장을 넣고 끓인 민어탕은 고소한 맛이 깊어 '탕중왕'(湯中王)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그 탕 속에서 어쩌다 부레 한 조각을 건지면 횡재나 다름없다.

껍질은 살짝 데쳐 기름소금에 찍어먹고 부레는 생것을 맨소금으로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소 등골을 씹는 것처럼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부레는 예부터 소목장들이 나무를 붙이는 풀 중에서 최고로 쳤다. 지금도 장인들 사이에선 성능 좋은 본드보다 민어풀을 더 귀히 여기고 있다. 박물관에 있는 고가구는 모두 민어풀로 이어 붙인 명품들이다.

민어는 여름 음식으로 분명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선 쉽게 만날 수가 없다. 전국의 맛난 음식이 다 모인다는 서울에는 민어 전문 음식점이 몇몇 있긴 하지만 호사가들의 전유물인데다 우선 값이 비싸고 요리방법과 양념이 원형에서 다소 벗어나 진미를 느끼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한다.

##늦봄 구입 냉동보관…삼복철에 한 마리씩

맛은 멋과 마찬가지로 단순소박이 원형이며 그것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민어가 많이 잡히는 목포 인근의 섬사람들은 늦봄 민어 값이 쌀 때 구입해 냉동고에 보관해 뒀다가 본격적인 삼복철에 한 마리씩 꺼내 찜을 해서 먹는다고 한다. 찜통에 민어와 무만 넣고 푹 쪄서 소스도 아주 단순하게 간장에 마늘만 다져 넣고 즐긴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두에 말한 민어의 본질을 그대로 건져내는 셈이다.

나는 여태 음식 취재를 핑계로 목포에 세 번 다녀왔다. 그것도 민어 요리로 유명한 영란회집(061-243-7311)에서 한 접시에 4만5천원이나 하는 민어회와 민어탕을 실컷 먹고 돌아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인정하는 삼복에 민어탕을 먹는 양반이다. 그래, 어쩔래.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