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작은아이의 위장전입

입력 2010-08-30 07:28:20

위법'탈법 일삼는 높으신 분들 그렇게 해야 그 자리 올라가나

우리 집 작은아이는 초등학교를 6곳을 다녔다. 사연은 이렇다. 서울 살 때 아이는 집 부근에 있는 안암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부산대학에 부임하여 구서동에 집을 얻자 아이는 구서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2년을 살다가 전세살이를 면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따라 지금 살고 있는 해운대 신시가지로 이사를 했다. 전학을 하자 했더니, 해운대초등학교로 가란다. 신시가지 입주 초창기라 학교는 하나도 열려 있지 않았다. 몇 달 해운대초등학교를 다녔더니, 좌동초등학교를 다 지었다고 그리로 가란다. 집 가까이 있고, 새로 지은 학교라 시설도 좋아 퍽 만족스러웠다. 아이는 '우리 학교'가 생겼다면서 밝게 웃었다.

얼마 뒤 상당초등학교를 새로 지었으니, 아무아무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모두 그리로 가라는 명령이시다. 해운대로 이사 와서 세 번째 학교다. 아이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일껏 동무들을 사귀어 놓았는데, 왜 이렇게 자꾸 학교를 옮기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하지만 미천한 백성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쩔 것인가. 또 전학을 할 수밖에. 전학을 한 뒤 아이는 '상당'이란 학교이름이 찍힌 체육복을 입고 축구를 한 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다섯 곳의 학교를 다닌 작은아이는 드디어 6학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이웃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불어나는 책도 감당이 안 되고, 큰아이도 중학교에 입학하고 해서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사를 하고도 작은아이는 계속 상당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상당초등학교가 학생이 넘쳐 일부 학생을 덜어내 다른 학교로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다. 작은아이는 여섯 번째 학교로 가야 할 판이었다.

6개월만 있으면 졸업이었다. 다시 전학을 하면,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초등학교가 없어진다. 결코 행복한 일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만 상당초등학교 옆에 있는 아내 친구 집에 '위장전입'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계속 학교를 다녔다. 나와 아내는 '불법'을 저지른 뒤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한데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학교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통보가 왔다. 당신네들이 아이를 '위장전입'시켰으니, 당장 신곡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키겠단다. 통보를 들은 아이는 '짐승처럼' 울었다. 4달만 있으면 졸업인데, 또 동무들이랑 헤어져야 하냐고? 아버지가 어떻게 좀 해 보라며 눈물을 쏟았다.

할 수 없이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 도대체 해운대에 이사를 와서 네 번이나 학교를 옮기는 것이 말이냐 되냐고? 또 불과 넉 달 뒤면 졸업인데 전학을 하라니, 아이의 입장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이 교육적 처사냐고? 이렇게 따졌더니, 그쪽의 말은 이랬다. 상당초등학교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항의는 허망한 일이 되었다. 아이는 신곡초등학교로 간 뒤 두어 달을 다니고 졸업했다. 겨울방학이 사실상 수업의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무총리와 장차관의 인사청문회를 보고,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탈세, 후안무치, 거짓말 등은 고위공무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깨달았다. 불과 몇 달만 양해해 주면 아이가 오랫동안 사귄 동무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는 것을, 각박하게 들추어 훼방하는 사회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위법, 탈법, 불법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계신데도, 어찌 들키지 않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도리어 그렇게 해야 높은 그 자리에 올라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총리나 장'차관 등 고위직의 후보로 그 누구를 선택해도 이번 인사청문회와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우리 사회가 정직하고 청렴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보다 거기에 반하는 소인배들이 출세할 확률이 훨씬 높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위공무원직의 배경을 이루는, 학벌, 지역, 권력, 돈, 혼인 등으로 교직(交織)된 대한민국 상층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 아니한가. 이것이 대한민국 사회의 비극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나도 고위공무원이 될 자격 하나는 갖추고 있구나. 아들 놈을 위장전입시켰으니 말이다.

강명관(부산대 교수 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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