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칼럼] 국치백년, 독립운동가 후손을 생각하다

입력 2010-08-26 08:03:25

8월 29일. 1세기 전인 1910년 그날,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다. 이후 만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야 했다.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매일신문은 국치 백년을 맞아 올해 1월 1일부터 기획시리즈 '국치 백년'을 연재하였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서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다만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에 대한 심층 취재와 분석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100년 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게 되었을 때 두 가지의 대비되는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바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침략자의 앞잡이가 되거나 이를 이용함으로써 부와 지위를 축적하는 경우이다.

당시 우리 대구경북지역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과 가문을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였다. 2008년 3월 국가보훈처가 인정한 독립운동가 1만134명 중 우리 지역 출신이 1천664명으로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안동지역 출신만 하더라도 323명으로 서울 전체 232명보다 많다. 증빙 자료가 없어 등록되지 못한 독립운동가 또한 셀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은 어떠한가? 스스로 엄격한 절차를 거쳐 등록한 후손에 한하여 일정액의 보훈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국가가 그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증빙 자료가 없어 등록되지 못하거나 타국을 떠도는 후손들에 대하여는 관심조차 없다. 독립유공자 유족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가 넘고,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며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는 가슴 아픈 통계도 있다. 독립운동가의 노력으로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금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졌음을 자랑한다. 부끄럽고 모순된 현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현재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지위)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 선생은 한일합방 직후 당시 99칸의 종택(안동, 임청각)은 물론 전 재산을 처분하고 50여 명의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떠났다. 선생의 아들과 손자 등 일가 9명이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음에도 그 후손인 선생의 증손자들은 고아원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석주 선생의 영향을 받은 추산 권기일 선생은 1912년 3월 26세의 나이에 재산을 정리하고 12명의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떠났다. 당시 선생은 30㎞ 안에 남의 땅이 없을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선생은 34세의 나이로 1920년 8월 15일 순국하였다. 선생의 아들은 광복 후 귀향했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 간장을 팔러 다녔으며 선생의 손자도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담배원료공장 등에서 일했다고 한다.

광복 후에 고향으로 돌아온 후손들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만주와 사할린 등지로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 역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지만 이역만리 타국에서 서럽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겐 조국의 번영도 남의 나라 일인 것이다.

이에 비해 침략자를 끌어들이거나 앞잡이가 됨으로써 부와 지위를 축적한 친일파 후손들은 어떤가? 그들은 여전히 부와 권세를 누리면서도 선대의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송사를 지금껏 계속하고 있다. 한 사람의 친일파가 나오면 자손 대대로 호의호식할 수 있는 반면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가 나오면 삼대가 망한다는 웃지 못할 말도 있다. 나라를 위해 생명과 재산을 바친 것에서 나아가 후손들까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면 하나 뿐인 몸과 전 재산을 바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100년 전과 동일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에 준하는 경우는 늘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진정으로 선조들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언론의 관심을 기대해 본다.

김인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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