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앙, 만년설 녹은 대구 70% 크기의 레만호가 식수원
1주일 동안 멀리도 달렸다. 대구 동네우물되살리기를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유럽을 찾아 나선 길.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원의 도시 독일 뮌헨에서 시작해 랑엔아우→울름→슈투트가르트를 거쳐 프랑스 국경을 넘어 비텔→오를레앙→비시를 봤다. 그리고 유럽 마지막 방문지인 에비앙으로 향하는 길이다. 짧은 여행에서 배우면 얼마나 배우겠냐만 잘 짜여진 취재 섭외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느낌이 잠시 밀려온다.
◆물에 대한 무지(無知)=동네우물되살리기팀이 찾은 '물의 도시'에는 어김없이 강이 흘렀다. 랑엔아우엔 도나우강, 슈투트가르트엔 네카어강, 오를레앙엔 루아르강, 비시엔 알리에르강이 도도히 흘렀다. 세계의 발전한 도시는 대부분 큰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다. 뉴욕·파리·베를린·런던·로테르담·몬트리올·상해·시카고·홍콩·싱가포르가 그렇다. 인류문명이 물과 함께 했다. 황하·인더스· 나일· 유프라테스강에서 4대 문명이 탄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강의 서울 등 4대강에 대도시가 형성됐고, 바다를 끼고 부산과 인천이 번영했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안동 구미와 낙동강과 금호강을 갖고 있는 대구도 '물의 도시' 자격은 갖췄다. 물과 사람과 문명과 도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을 너무 모른다. 바다-강·호수·댐-빙하-구름-동식물-인체 등 이 세상 어떤 것도 물과 무관하지 않으나 물이 풍부해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아름다운 산하를 우리나라엔 질 좋은 물이 많아 더 무관심했고, 더 무지하다.
◆경외(敬畏)의 대상 물=뮌헨에서는 강물과 호수물 없이 지하수만으로도 대도시민의 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랑엔아우에서는 지하수와 도나우강을 섞어 질좋은 수돗물을 만드는 지혜를 봤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강이 흘러도 그 강물을 남용하지 않고, 도시 외곽의 깨끗한 지하수와 멀리 보덴호의 물로 먹는 물을 해결하는 강에 대한 경외심을 목도했다. 비텔과 비시에서는 좋은 물 하나를 브랜드화해 도시를 번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공부했다.
그리고 물은 2천여 가지가 넘는 미네랄이 녹아 있는 너무도 신비한 물질이라는 것도 알았다. 인간이 안다는 것은 물에 녹아 있는 물질이 고작해야 수십여 가지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십여 가지를 분석하며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물은 2천여 종의 미량 미네랄이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기묘하게 작용해 생명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인간이 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레만 바다(?)=국경마을 에비앙(Evian)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들른 휴게소 인근에서 간이 정수 시설 건설 현장을 만났다. 행운이다. 수초를 심어 물을 정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휴게소와 주유소 하나뿐인데도 정수 시설이 있다. 프랑스에는 이런 간이 정수 시설이 수천 곳 있다고 한다.
에비앙이 가까워지자 구릉과 목장이 이어지던 풍광이 확 바뀐다. 도로가 우리나라처럼 높은 산의 계곡을 따라 나 있다. 계곡도 무척 깊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빙하가 녹아 내리며 깎은 빙식계곡이다. 협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날 땐 아찔하다. 협곡을 지나니 수직의 석회암 절벽이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구름이 걸린 산중턱을 향하는 오르막에서는 버스가 하늘로 날아가는 듯한 착각까지 불 일으킨다. 알프스산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에비앙 57㎞란 이정표가 보이는 지점에 쥐라 지역이 있다. 중생대 쥐라기가 이 곳 쥐라지역에서 나왔다 한다. 중생대 3기 중 2기에 속하는 쥐라기에 공룡 등 거대한 파충류가 지구를 지배했고, 바다에는 암모나이트가 있었고, 조류가 출현했다. 공룡 화석이 이 일대에서 많이 발견되자 학자들이 공룡 시기에 쥐라 지명을 붙였다. 문경탄광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 정작 우리는 쥐라기공원이란 공룡 영화로 이 시기를 익숙하게 떠올린다.
에비앙에 앞서 토농-레뱅(Thonon-les-Bains)에 먼저 닿았다. 토농-레뱅 또한 내추럴미네랄워터 '토농'을 생산하는 물의 도시다. 아기자기한 마을 모습에 차를 멈추고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토농 또한 물 취재 대상지로 훌륭한 마을이다.
에비앙에 도착하니 알프스 산지 최대의 레만호(Leman L.)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했다. 호수 건너에 있는 스위스에서는 제네바호라고 부른다. 에비앙에서 보이는 스위스는 국제기구 본부가 많은 로잔이다. 호안선 길이 195㎞, 평균 수심 154m인 레만호는 호수가 아니라 차라리 바다다. 호안을 따라 마라톤 코스를 만든다면 4개를 만들고도 남는다. 다른 '물의 도시'에 강이 있듯 에비앙에는 대구 면적의 70%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맑은 호수=레만호의 물은 맑디맑다. 호수 중앙이 국경선인데 이처럼 물이 맑으려면 스위스와 프랑스가 함께 오염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레만호에 접한 에비앙, 로잔, 제네바는 나라가 다르지 않다면 이웃 마을이라고 해도 좋다. 에비앙에 살면서 로잔과 제네바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하루 10여 편 운행되는 배로 로잔까지 30분, 차로 제네바까지 30분 걸린다. 그렇게 가깝고 왕래가 잦으니 애잔한 러브스토리도 숱할 게다. 에비앙에서 바라보는 로잔의 야경이 아름답듯 로잔에서 보는 에비앙 또한 아름다울 터이고, 마을이 아름다우면 그곳에 사는 사람 또한 아름답게 느껴질 개연성이 있다.
호수에는 백조 원앙 오리가 한가하게 노닌다. 갈매기를 닮은 새도 있다. 레만호가 바다같아 새도 착각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호수 부두 한쪽에는 수백 척의 요트와 보트가 정박해 장관을 연출한다. 여름 휴가철이면 이 배가 레만호를 뒤덮는다. 제네바와 로잔의 배도 에비앙의 배와 뒤섞여 물을 즐긴다.
멀리 알프스 자락에 만년설이 보인다. 프랑스에도 스위스에도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가 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에 지는 해가 만년설을 마지막으로 비춰 봉우리가 마치 보름달 같다.
◆호수물이 식수원=호숫가 마을들은 모두 레만호 물을 식수원으로 쓴다. 호수물을 정화해 수돗물을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비가 모이고 만년설이 녹아 내려 호수가 되고, 그 물을 사람들이 사용한다. 주민들이 마시는 물이고, 즐기는 물이고, 관광산업의 원천이 되는 물이니 오염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에비앙의 과거 공식 지명은 에비앙-레뱅(Evian-les-Bains)이다. 뱅(Bains)이란 지명은 물이 풍부한 곳에 붙는다. 토농이 그렇고 유황온천지로 화가 르누아르가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한 엑스-레뱅(Aix-les-Bains)과 테르시스-레뱅(Tercis-les-Bains), 캉보-레뱅(Cambo-les-Bains)이 또한 그렇다.
레만 호수물로 만든 에비앙의 수돗물은 질이 매우 좋다. 숙소 화장실에서 맛본 수돗물은 생수처럼 상큼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100여 개 국에 수출돼 생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생수 에비앙의 비밀은 무엇일까.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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