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어린이집 數 전국 최저…대구 맞벌이 힘들다

입력 2010-08-21 07:13:06

대구 수성구립어린이집인 물망이어린이집은 질 높은 교사, 투명한 운영으로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수성구립어린이집인 물망이어린이집은 질 높은 교사, 투명한 운영으로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이보영(31) 씨는 딸 수경이를 보면 아직도 마음이 안쓰럽다. 맞벌이인 이 씨 부부는 마땅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옌볜 이모'라고 불리는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했다. 한 달에 12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그래도 어린 아기를 생각하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출근 후 볼일이 있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기는 악을 쓰며 울어대고 있었고 그 아주머니는 아기는 나몰라라 한 채 안방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던 것. 당장 해고했지만 그동안 말 못하는 아기가 얼마나 울었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다.

만약 이 씨의 집 가까운 곳에 영아전담 국공립어린이집이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저렴한 국공립어린이집'을 원한다. 하지만 대구에 국립어린이집은 아예 없다.

◆대구 국공립 보육시설, 전국 최하위

대구에서 공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최소 2년 전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 그래도 마음 놓을 수 없다. 공립어린이집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국공립보육시설은 2008년 9월 기준 1천769개다. 이는 전체 보육시설 3만2천548개 가운데 5.4%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구는 전국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2% 선. 대구 전체 민간어린이집은 1천518개이지만 이 가운데 공립 보육시설은 36개가 전부다. 반면 서울의 경우 국공립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11.2%에 달한다.

대구의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은 전국 최하위권인데다 꼼꼼히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동구 율하동 휴먼시아 단지 내에 3개가 분포하고 있다. 중구 2, 동구 7, 서구 6, 남구 1, 북구 5, 수성구 3, 달서구 12개로 구별 편차도 심하다. 대구시 보육시설 담당자는 "공립어린이집 한 개를 지으려면 20억원 이상 든다"면서 "영유아 수가 줄어들면서 민간어린이집도 과잉상태이기 때문에 국공립어린이집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민간보육시설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이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육정책 전문가들은 "최소한 전국 평균 수준에라도 맞춰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항변하고 있다. 정순천 대구시의회 의원은 "김범일 시장은 2007년 9월 시정질문 답변에서 2010년까지 국공립 보육시설을 25개소에서 77개소로 확충해 국공립 비율을 6.2%로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 비율은 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취약보육 아이들은 어디로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믿을 만한 곳에서 키우고 싶어하지만 특히 0~2세 사이의 영아를 가진 부모나 장애아를 둔 부모의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대구의 영아전담 시설은 41곳에 불과하며 장애아전담 어린이집은 더욱 적어 17개뿐이다. 이 가운데 장애아전담 국공립보육시설은 단 한 곳도 없다. 대구시 관계자는 "민간보육시설 1천500개 모두 경영자의 의지에 따라 영아 및 장애아 보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와 시설에 대한 신뢰가 더욱 중요한 영유아 보육과 장애전담 시설일수록 국공립보육시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장애전담 어린이집인 선화어린이집 문용우 원장은 "서울의 경우 40인 미만의 소규모 국공립 장애전담어린이집이 곳곳에 많은데 대구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국공립 보육시설은 특히 보육의 모델을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에 장애전담 국공립 보육시설이 생긴다면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 운영 방식을 제시해줘 장애아 교육에 있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한편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및 한부모·조부모가정에 대한 보육 서비스 또한 취약보육에 해당된다. 이들을 감싸안을 사회적 그물망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그렇다면 적정한 국공립 보육시설의 숫자는 몇 개나 될까.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개발센터에서 2009년 펴낸 보고서 '취약지역 국공립보육시설 확충 및 운영모델 정립 방안'은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 아동 비율을 보육시설 이용 아동의 약 30%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해 민간보육시설조차 남아도는 것이 현실이다. 민간어린이집들이 국공립 보육시설의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최근 대구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공립어린이집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3년 전 문을 연 수성구립 물망이어린이집은 황금동 롯데캐슬 입주민들이 10년 무상임대하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곳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보육을 하고 있어 맞벌이 엄마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정원은 50여 명이지만 대기 인원이 150명이나 된다. 물망이어린이집 김은희 원장은 "교사들이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아 질적 수준이 높은데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어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도 공립어린이집이 8개가량 된다. 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 이미원 수석연구원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을 때부터 공립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큰 재원 없이도 설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간 보육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선화어린이집 문 원장은 "최근엔 문을 닫는 민간 보육시설도 적지 않은데 이것을 인수해 국공립으로 전환시켜 운영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 밖에도 초등학교의 유휴 교실 활용, 대학 내 부지 또는 건물의 무상 임대 등의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정순천 대구시의원은 "보육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런던 외곽에 사는 부모들을 위해 매일 이용하는 기차역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버퍼베어(buffer bear)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경기도에서도 가정보육교사 제도를 도입한 만큼 대구도 차별화된 보육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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