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예보 40년 이동한 대구기상대장

입력 2010-08-18 09:57:59

예상치 못한 날씨 굴곡 "인생과 닮은 꼴"

'우르르 쾅쾅!'

16일 오후 대구시 동구 신암동 대구기상대. 갑자기 번개가 '번쩍' 치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청사건물 유리창 너머 바깥 세상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퍼붓는 굵은 빗줄기에 몇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빨리 전기 차단해. 낙뢰 조심하고, 비상발전으로 시스템 가동해."

이동한(58) 대구기상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대장은 예보관실에서 기상레이더를 예의주시하면서 레이더상에 짙은 갈색 부분으로 나타난 비구름대가 대구를 관통하자 "아무래도 비 피해가 우려된다"며 잔뜩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요즘처럼 국지성 폭우가 잦은 때는 처음 봅니다. 국지성 폭우는 사전에 기상관측이 어려운데 한번 비가 내리면 특정지역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죠."

이 대장은 특히 대구경북지역은 8월 한 달 동안 국지성 폭우가 잦다고 했다.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역이고, 경북은 소백산맥을 등지고 있어 산맥 주변지인 문경, 상주, 영주 등지에 국지성 폭우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 또 낮에 더워진 수증기가 위로 올라갔다가 밤에는 식어 다시 내려오기 때문에 낮보다는 밤에 폭우가 잦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해부터 읍면동 단위로 예보하면서 기상 예보 정확도도 많이 향상됐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이 대장은 빗줄기만 보면 자꾸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경주에서 중학교 다닐 적이었어요. 비 오는 날 초가집 처마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젖어들곤 했습니다. 또 비가 온 후 예쁜 무지개가 둥글게 피어올라 산 너머 마을과 우리 마을을 연결해 주는 것도 봤어요. 그땐 모든 게 신기했죠."

이 대장을 기상업무와 인연을 맺게 해준 것도 유년 시절 추억이나 호기심 많은 성격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그는 기상예보 40년 인생 동안 드라마틱한 예보가 많았다고 했다.

"부산기상청 총괄예보 담당으로 근무하던 당시 2003년 대구U대회 기상지원을 했어요. 개막식 날 낮에 대구스타디움 주변에 비가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대회조직위에서 저녁에 개막식을 해야 하는데 비가 올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하더군요. 개막식 2시간 동안은 비가 안 올 것이라고 했어요. 정말로 개막식 땐 비가 안 오고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비가 왕창 쏟아졌어요. 피를 말리는 예보였죠."

이 대장은 또 2003년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급습했을 때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닥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전했다. "태풍이 몰아치기 5일 전부터 해일이 올 거라고 미리 예보했지만 지자체들은 꿈쩍도 안 했어요. 답답해서 태풍 상륙 30분 전 광안리를 비롯한 바닷가 식당 주민과 손님들을 긴급대피시키라고 일일이 통보했어요. 30분 동안 주민을 가까스로 대피시켜 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해일이 급습했어요. 그래서 한 명의 인명피해도 안 내고 수만 명의 목숨을 살려낸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상청 본청 내에서 총괄예보담당을 지내기도 한 이 대장은 기상청 주관 전국 예보기술 발표회에서 4번이나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기상업무에 밝다.

"날씨의 흐름과 변화를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과 똑 닮았습니다. 태풍도 오고 돌발성 폭우가 내리듯 인생도 예상치 못한 굴곡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날씨를 이해하면 인생도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거예요."

이 대장은 내년 4월쯤 대구기상대가 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된다는 것에 고무돼 있다. 기후 업무와 예보 정확도를 한층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남한의 중심지역이기도 한 대구경북이 지역특성상 기후도 복잡하고 기후변화도 가장 심해 우리나라 기상연구에 적당한 환경을 갖고 있다"며 "국립기상연구소의 대구 이전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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