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성의 오지를 달리다] 고비사막 레이스 참가기 (GOBI MARCH)

입력 2010-08-18 08:12:50

소금뻘밭…개울… 양떼와 초원… 만년설… '천의 얼굴' 환상

산악코스에서는 암벽등산도 예사롭지 않게 해야 한다.
산악코스에서는 암벽등산도 예사롭지 않게 해야 한다.
소금사막을 빠져나와 달리고 있는 한 참가자.
소금사막을 빠져나와 달리고 있는 한 참가자.
공포의 소금뻘밭.
공포의 소금뻘밭.

'사막에도 초원이 있을까? 정답은 있다.'

사막이라고 꼭 모래만 있는 황무지라 생각하면 안 된다. 초원도 있고 산맥도 있는 여러 지역을 넓게 잡아 사막이라 한다. 그리고 대륙, 위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물론 일부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깊은 사막에 들어가 보면 상식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곤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사막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사막은 알고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의 자원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참가한 오지 마라톤 코스 중 가장 아름다웠던 지역이 어디냐고 하면 2006년 고비사막 대회를 꼽을 수 있다. 천산산맥 근처에서 열린 대회는 중간에 천산산맥을 넘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소금뻘밭을 지나기도 하는 어려운 여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주변의 풍경은 모든 어려움을 날려버리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회에는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나'라는 놀라움의 연속이며 가장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던 고비사막 대회 참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1. Stage-1 소금사막(거리 37㎞)

대회 장소는 우루무치 동쪽 지역이었다. 우측으로 눈 쌓인 천산산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우리나라 대관령에서도 아름다운 곳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사막 레이스를 여러 번 출전하다 보면 감정이 무디어질 수도 있지만 항상 출발 전에는 긴장되고 흥분된다. 수많은 현지 주민들의 환호 속에 대회는 시작됐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고비사막의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멋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돌산을 넘어 평원을 달리다가 하얀색 바다가 펼쳐진 소금사막 속에 뛰어들었는데 한마디로 지뢰밭이었다. 한발 내밀 때마다 푹푹 빠지는 소금뻘밭은 정글의 늪이나 바닷가 갯벌을 연상케 했다. 한 발을 빼내면 다른 발이 빠지고 도대체 신발이 몇 번이나 벗겨진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일부 지역은 양손까지 이용해 기어서 벗어나기도 했다.

첫 번째 체크 포인트 17㎞ 중 14㎞가 소금사막 지역이었는데 그 지역을 벗어나는 데 거의 3시간을 소비했다.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실크로드는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남로와 북로 두 가지 루트로 나눌 수 있는데 올해는 북로에 해당하는 코스로 경치가 좋고 중간에 유적지도 있는 특별한 곳이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까지 가는 길. 우측으로 보이는 천산산맥과 좌측의 기암 괴석들이 주는 신비로움이 지난해와는 확실히 다른 코스와 분위기였다. 8시간 32분으로 첫날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2. Stage-2 쉬운 코스(37㎞)

사막 레이스는 장비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첨단 장비의 집합장소. 대회 때마다 새로운 제품들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제품들이 있기에 외국 참가자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이번 코스는 평이하다. 지난 소금사막에서 고생한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희소식이다. 코스가 좀 쉽다고 해서인지 다들 죽을 것 같은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살아난다.

그런데 첫 번째 체크 포인트 근처 지점 같은데 갑자기 코스 안내 리본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길이 없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발자국과 나침반을 확인하면서 약 1㎞ 정도 가다 보니 다시 리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리본과 깃발을 현지인들이 가져가 버린 것이다. 리본은 양들의 표식으로 사용하고 깃발은 창문 가리개 용도로 집어 간다는 것이다. 순수한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선수 입장에서는 황당 그 자체였다. 완만한 코스 탓이었는지 부담없이 7시간 만에 두 번째 스테이지를 마쳤다.

#3. Stage-3 산악코스(39.7㎞)

고비사막 대회 참가자라면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마운틴 데이'가 있다. 해발 4,000m 이상을 올라가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기도 하고, 언제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 모르는 흙산의 칼날 능선을 타고 가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항상 올해는 어떤 마운틴 데이가 될지 기대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과 걱정이 교차한다.

오늘은 출발 지점부터 가장 높은 지역까지 거의 1천m를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초반 코스는 필리핀 보홀섬의 초콜릿 힐 같은 분위기의 아담한 구릉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일단의 구릉과 급경사의 언덕을 오르니 그때부터 본격적인 언덕의 시작이다. 산 너머 저 멀리 천산산맥이 보이고 눈 앞에는 바리케이드 같이 작은 산들이 끝없이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 분명히 그 많은 산중의 하나가 우리들이 넘을 목표이지만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올해 코스는 산악지역이 많은지라 나무와 풀, 그리고 양들이 많다. 산 넘고 또 넘고 넘어 물 건너 건너 양떼를 헤치고 나아가니 어느 순간 주변이 딴 세계로 변해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가수 남진의 노래 가사가 딱 어울릴 만한 그림 같은 코스에 내가 서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이 진정 사막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경치다. 좌우로 펼쳐진 그림 같은 초원과 전나무, 눈 덮인 봉우리들, 어디선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달려올 것 같다. 맞다, 이곳은 알프스다. 아시아의 알프스.

#4. Stage-4 긴 코스(78.1㎞)

첫날부터 시작된 초속 15m 이상의 태풍급 바람이 휘몰아치며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 바람 때문에 일찌감치 지열이 식어버린 관계로 밤의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친다. 이제는 추위와의 싸움도 시작됐다.

초반의 길도 없는 황당한 급경사의 내리막과 강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건너서부터는 줄곧 평지와 완만한 구릉으로 이뤄진 코스의 연속이다. 이곳 지역은 길 바닥에 허브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허브향에 취하고 아름다운 주변 환경에 취해 가자니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네 번째 체크 포인트를 바로 앞에 두고 우측으로 천산산맥을 벗 삼아 달리는데, 구름이 끼고 날이 어두워지더니 초강력 회오리바람까지 동반한 폭풍우가 치기 시작했다. 누런 모래먼지들이 하늘을 뒤덮어 길이 잘 안 보이는데, 강한 모래폭풍과 동반된 모래 알갱이들이 다리에 부딪혀 따끔따끔 아프기까지 하다. 방풍용 고글을 쓰고 버퍼로 입을 막고 앞만 보고 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5. Stage-5 천산산맥 코스(53㎞)

출발과 동시에 우리 앞에는 거의 수직으로 오르는 2천888m의 천산산맥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코스는 저 산만 넘으면 내리막이라는 기대감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갔다. 정상에서부터는 여러 참가자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리막을 신나게 달렸다. 작은 마을을 지나 평원 지역으로 들어서니 온도가 달라진다. 왠지 오늘은 더울 것 같다는 예감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는 물이 있기에 시원함이 있다. 여러 번 물도 건너고 오르막도 오르고 여유있는 행군을 했다. 그런데 계곡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서니 상황이 달라진다. 이번 코스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완전한 돌산이다. 기온은 점점 올라가 순식간에 40℃를 넘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물은 바닥나 목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끝도 보이지 않는 돌산을 넘어가자니 탈진 일보 직전이다.

이 돌산은 2006년 고비사막 레이스의 압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 또 한 번 돌산을 오르는데 오르고 올라도 계속되는 언덕으로 인해 나중에는 골인점이 어딘지 포기하게 만들었다.

#Stage-6 짧은 코스(13㎞)

마지막 날까지 오는 동안 거짓말같이 몸이 멀쩡하다. 그 흔한 물집 고생도 없고 날이 가면 갈수록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는 사막 체질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불리기 시작한 나의 닉네임 '사막의 아들'도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13㎞의 짧은 거리를 달리는데, 오늘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고비사막 대회는 매년 코스가 변하다 보니 앞으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스쳐 지나치는 바위와 산들, 계곡, 마을과 사람들을 기억 속 어딘가에 새겨 놓기에 바쁘다. 계곡을 빠져나오니 멀리서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온다. 대회는 Tian Shan 마을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종 기록은 50시간 22분 43초, 순위는 50등으로 고비사막에서의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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