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마련한 가재도구는 다시 물에 잠겨 "도대체 누가 책임지나"
대구 북구 노곡동이 또 잠겼다. 한 달 전 악몽 같았던 기억을 잊기도 전에 '물폭탄 사태'가 고스란히 재연됐다. 주민들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라며 울부짖었다.
16일 오후 5시 30분 대구시 북구 노곡동 금호강 주변 마을의 모습은 처참했다. 검붉은 흙탕물이 배수펌프장 공사구역에서부터 위쪽으로 240m나 이어져 있었다. 가게는 간판만 보일 뿐 입구가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집에서 흘러나온 가구와 가전제품,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주차된 차들은 지붕만 보였다.
흠뻑 젖은 옷에 슬리퍼를 신은 주민들은 수마(水魔)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날 비로 노곡동은 62가구와 30여 대의 차량이 침수됐고 79명이 대피해야 했다.
주민들은 한 달 만에 같은 일이 재발한 것은 "보수가 끝난 배수펌프장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분개했다. 노곡동 침수피해 보상 대책위원회 양기동(42) 사무국장은 "한 달 전 처음 침수가 발생했을 때 행정기관들은 분명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제진기가 또 말썽을 일으켰으니 누가 책임질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을 주민 이판규(52) 씨는 "지난 일요일 장판을 바꾸고 도배를 마쳐 겨우 피해 복구를 끝냈다고 좋아했는데 하루 만에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며 "한 달 동안 도대체 시와 구청이 뭘 한 거냐"고 말했다.
배수펌프장에서 240m 떨어진 노곡골든하이츠에서도 20여 명의 주민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린이집이 물에 잠겨 20여 명의 아이들이 갇혀 있었기 때문.
학부모들은 "선생님 전화를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20분 만에 침수가 일어났다"며 "무사하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충격을 받지나 않았을까 걱정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은 지난번보다 침수피해가 더 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침수된 도로가 약 40m더 늘어난 것. 평일 오후 시간대에 순식간에 발생해 가게와 공장에서 일하던 몇몇 사람들은 옥상으로 대피해야 했다.
이날 오후 6시 45분 두 여성이 구조대원의 보트를 타고 물가로 나왔다. 정귀용(41) 씨는 "갑자기 물이 차서 가방과 귀중품만 챙겨서 옥상으로 대피했다. 옥상에서 현장을 바라보면서 기다린 2시간이 지옥 같았다"며 "배수펌프장이 정비되더라도 똑같은 일을 당할까봐 너무 무섭다"고 몸서리쳤다.
같은 시간 대형 배수펌프기가 투입되면서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드러난 바닥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오후 7시 20분쯤 잠시 비가 그치면서 청소차량과 자원봉사자들이 주변정리를 위해 들어섰지만 주민들이 도리어 이를 막았다. 주민들은 "지난달 피해에서 북구청은 청소를 하면서 없어진 가재도구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그런 구청이 또다시 비가 그치자마자 청소를 하려 하는데 어느 누가 이를 그대로 지켜보겠냐"며 반발했다.
※ ▶ 버튼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후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은 뒤 임시 거처로 마련된 조야초교에는 일부 주민만 남아 있었다. 침수지역에서 2㎞ 떨어져 도보로 30분 거리인 탓에 이동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 구청의 차량 지원도 없었다. 주민들은 친척집이나 피해를 입지 않은 이웃집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사무실이 잠긴 김영준(42) 씨는 "집은 다른 곳이지만 배수펌프장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냈다"며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보상대책위원회 이수환 위원장은 "주민들은 지금 정신적으로 공황상태"라며 "겨우 지난번 충격에서 마음을 추슬렀는데 또 변을 당해 일어설 기력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주민 대표 14명으로 구성된 침수피해 보상대책위원회는 17일 오전 보상대책 등을 협의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영상취재 장성혁기자 jsh052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