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수학·과학에 스스로 흥미 느껴야죠"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초·중학생들에게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부산) 는 '꿈의 학교'로 불린다. 1991년 첫 입학생을 받기 시작한 한국과학영재학교는 매년 수천 명이 지원, 높은 경쟁률 속에 입학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이달 5일 2011학년도 최종 입학 합격자 147명을 발표했다. 총 2천738명이 지원, 약 19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구에서는 이창훈(경구중 3년), 최종재(범물중 3년), 김현승(중앙중 3년), 김양운(성곡중 3년), 이원기(매호중 3년) 등 5명의 중학생이 선발됐다. 타 시·도에 비해 적은 수이긴 하지만,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좋은 학습 모델이다. 대구 출신 합격생들을 만나 한국과학영재학교만의 독특한 입학생 선발과정과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영재들이 본 한국과학영재학교 시험
한국과학영재학교 지원자들은 2단계에 걸친 선발 시험을 치른다. 1단계는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에세이, 영재성 입증자료 등 서류 전형이며, 1단계 통과자에 한해 2박 3일에 걸친 캠프 형태의 2단계 시험이 치러진다. 2단계에서는 창의력을 테스트하는 서술식 지필시험과 영화를 주제로 한 논술, 인성면접, 주제별 그룹토론이 날짜별로 진행됐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100% 입학사정관 전형이 적용됐다.
학생들을 만나 어떤 내용과 형식의 시험문제가 출제됐는지 물어봤다. 영재 중의 영재를 선발하는 학교답게 한국과학영재학교의 2단계 선발시험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매우 독특했다. "현재의 성적보다 장래의 가능성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는 학생들의 설명이 저절로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시험은 지난달 23~25일 치러졌다.
첫날 지필시험부터 심상찮았다. '산불이 났다. 이 산불이 온실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눠 서술하라' '강우량을 측정하는 자격루에는 비가 내리면 나무막대가 상승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나무막대가 비의 양에 따라 일정하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보라'. 학생들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 시험문제들은 수학·과학 문제집을 풀어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김현승 군은 "침착하게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성실하게 답안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가장 압권은 이것. 빙하의 두께변화, 대기 중 CO₂농도변화, 기온변화 등 4개의 그래프를 제시하고, '한국과학영재학교가 해발 200m에 있다. 위 4개 그래프 중 일부를 토대로 언제쯤 한국과학영재학교가 물에 잠길지 서술하시오'라는 문제였다. 최종재 군은 "당황하지 않고 그래프를 계산해 5만년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둘째 날은 영화 논술과 면접이 진행됐다.
영화는 2000년 프랑스에서 제작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란, 이라크의 오랜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경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쿠르드족의 비참한 현재를 담은 작품이었다. 학생들에게 제시된 문제는 '우리는 왜 쿠르드족에 대해 무관심한가. 그리고 영화의 결말을 자기대로 상상해 써보라'. 이창훈 군은 "1시간 안에 답안 작성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빠듯했다"고 기억했다. 면접에서는 1단계에서 제출된 개인별 자료나 지원 동기 등 예상된 질문들이 많았지만, 의외의 질문도 있었다. 김현승 군은 "면접관이 '우리나라의 미용실이 몇 개나 있을까'라고 묻기에 순간 당황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의 그룹토론도 학생들에게는 생소했다. 학생들은 5명씩 조를 짜서 주어진 3개 주제에 대해 20분씩 총 1시간 동안 토론했다. 입학사정관은 토론장 뒤에서 토론 모습을 지켜보며 점수를 매겼다. 역시 만만찮은 내용이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태풍이 났을 때 생필품 가격이 10배 가까이 올랐다. 이것은 수요·공급에 의한 자연스런 가격 상승인가, 상인들의 탐욕 때문인가'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 말해보라' '몇몇 진화론자들은 고기를 나눠먹는 풍습에서 뇌가 발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김양운 군은 "토론 경험이 별로 없어 힘들었다"며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전반적인 시험 스타일이 일반 학교 시험과 너무 생소했지만, 장래성을 평가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이렇게 준비했어요
대구 합격생들은 출신 중학교는 서로 달랐지만, 한국과학영재학교 최종 입학까지 아주 닮은 과정을 걸어왔다. 내신이 평균 전교 10등 안에 드는 등 학교 공부에 충실했고, 모두 지역 교육청 영재원과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 출신으로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창훈 군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동부교육청 영재원을 다녔고, 중1때 경북대 영재원 수학반에 입학해 사사과정(3학년)까지 마쳤다. 창훈 군은 "중2때까지는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했는데,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한국과학영재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최종재 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북대 영재원, 6학년때 대구교대 영재원,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다시 경북대 영재원 물리반에 입학했다. 종재 군은 "초등학교 때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알게 됐다. 다른 학교보다 자유롭고 특색 있는 학교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김현승 군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동부교육청 영재반을 다녔고, 중학생이 돼서는 경북대 영재원 물리반에서 공부했다. 현승 군은 "4살 많은 형이 추천해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김양운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남부교육청 영재반에서 공부했고 경북대 영재원에서 사사과정을 마쳤다.
이들에게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 비결을 물어봤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과학, 수학에 스스로 흥미를 느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승 군은 "과학 관련 책을 많이 읽고,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관련 상식을 쌓아야 면접이나 토론에서 인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특히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제출하는 영재성 입증 자료가 관찰일지나 독후감, 연구 활동 보고서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했다. 양운 군은 "학생은 흥미가 없는데, 부모님 고집으로 무작정 영재학교를 준비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며 "수학·과학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창훈 군은 "중1 때 수학올림피아드에 도전하면서 수학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여러 대회 입상 성적도 영재학교 입학에 주요한 자료가 된다"고 했다. 종재 군은 "천재 물리학자의 인생사를 담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감명깊게 읽으면서 공부가 즐거워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면서 "친구들 중에는 학교에서 내주는 프린트물은 등한히 하면서 학원에서 숙제로 내준 프린트물은 열심히 보는 경우가 있는데, 무엇보다 학교 공부에 충실해야 영재학교 입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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