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일이다. 늦은 여름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이웃집 소가 우리 논의 익어가는 나락(벼)을 '두어 뙈기'만큼이나 뜯어먹은 사건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나락이 한 말가량 되니까 그 집에 찾아가서 배상을 요구하자고 했고 아버지는 그냥 넘어가자고 해 부부싸움으로 확대된 것이다.
"짐승 키우고 자슥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막말 못한데이. 우리집 소도 남의 집 곡석 먹을 수 있고 달구새끼도 남의 마당 곡석 마구 파헤칠 때도 있다. 그라고 내자슥도 밖에 나가서 쌈질도 하고 버릇 없다고 어른들한테 욕도 안묵나. 그랑께 짐승이나 자슥이나 부모 마음대로 되더나." 이렇게 아버지의 조용한 설득 앞에 어머니는 유구무언이 돼 버렸다. 부모님의 '너그러운' 언쟁이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소가 남의 곡식을 먹을 정도로 방목을 하거나 한 마을에서 몰이로 소를 먹이던 시절이 추억의 한편에 완전히 정착해 버렸다. 축사를 지어 대량으로 소를 키우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그 옛날 부모님이 벌이던 언쟁 역시 아득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요즘의 자동차 운전을 보자.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하지만 남에게 방해되는 운전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항상 앞차일 수도 없고 뒤차일 수도 없다. 뒤에서 보는 차에게는 앞차이고 앞에서 보는 차에게 내 차는 뒤차가 된다. 시시각각 앞뒤가 바뀌고 남의 차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남이 내 차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운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차 운전할 때 '역지사지'하면 결코 막말은 못한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운전을 하고 내 뒷모습이 뒤차의 앞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급정거, 마구 누르는 경음기 소리, 지그재그 운전, 꼬리물기 등 품위 없는 운전이 사라지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는 운전석의 사람이나 짐승을 키우는 사람과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일맥 같은 상황이 아니겠는가. 현대인들이 겪는 갈등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온다. 부모와 자식 간, 노사 간, 부부간 등 누구와 어떻게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가오는 갈등의 무게는 한결같다.
'맹자' '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을 한 번 더 읽으면서 아름다운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역지사지의 깊은 뜻을 새겨 보자. 세상의 이치를 상대방의 입장과 바꿔 생각해보면 갈등은 사라지고 만사가 부드럽게 해결될 것이다. 푹푹 찌는 이 한여름에 더더욱 말이다.
김창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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