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들여다 보기] 뮤지컬 배우로 산다는 것

입력 2010-08-05 14:55:18

재능과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좋은 배우의 조건

춤과 노래 등 뮤지컬이 주는 즐거움이 많지만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배우를 보는 것이다. 무대 위의 배우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라면, 그리고 그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경우라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배우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의 김소현처럼 천상 배우로서의 재능을 타고나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배우가 있고, 의 조승우처럼 모든 역할을 자기 내면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배우도 있고, 재능을 넘어 쉼 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배우의 모습을 완성해가는 의 홍지민 같은 배우도 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뮤지컬 배우들, 그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 소위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들 중에는 억대 연봉자도 있고, 연예인 못지않게 팬들을 몰고 다니면서 흥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뮤지컬 인생도 시작부터 평탄하진 않았고 현재도 많은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은 투잡을 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이다. 우선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오디션에서 선발되기가 쉽지 않다. 노래, 춤, 연기 3박자를 고루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기본이고 타고난 재능과 배우로서의 진정성, 거기에다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 한다.

배우는 단순히 대본의 활자를 암기하고 분석해서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움직임이나 감정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창조해내야 할 인물과 충돌하고 고민하게 되는데, 스스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들어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서만 최상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 없이 얄팍한 재능과 테크닉만 믿고 진정성 없이 작품을 대하는 배우는 결코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끝없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배우는 하얀 도화지 같아야 한다(?)

필자도 배우로 공연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단역부터 주연까지 9편의 뮤지컬과 연극에 출연했고 4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때 '배우는 하얀 도화지 같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 배우는 어떤 그림, 어떤 색채든 표현이 가능한 도화지처럼 비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배우의 꿈을 접게 된 계기는 더 이상 배우로서 깨끗한 도화지가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칠수와 만수'란 연극에서 배우와 기획을 겸했던 적이 있는데, 배우로 칠수를 연기하면서 객석의 관객 수를 헤아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배우의 꿈을 접고 공연기획자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배우에서 연출가로, 지금은 공연기획자로 내 인생의 꿈과 항로는 수정되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배우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을 만큼 배우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배우들

지금도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좋은 배우를 발견하는 것은 무척 설레고 행복한 일이다. 필자가 만난 좋은 배우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끔씩 그들과 무대 밖에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배우가 가장 빛나고 아름다워 보이는 곳은 무대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 속의 캐릭터를 잘 창조한 배우들은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하고,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한국 뮤지컬의 미래가 그나마 밝게 보이는 것은 좋은 뮤지컬 배우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원준(㈜파워포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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