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하수 지도'작성, 수질·양 주민들에 공개
프랑스 비텔시 주민들은 물로 인해 삶이 여유로워진 마을인만큼 물과 물 관련 산업 이외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 관광산업 수입은 감안하지 않더라도 물 관련으로 생기는 세수만 연간 229억원 정도. 6천명 인구의 작은 도시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또 물 치료 의사만 80명이 상주하고, 물 치료사가 연인원 3천명에 달하는 등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물이다.
그래서 포기하다시피 하는 대표적 산업이 농업이다. 목장이나 밀밭, 포도밭, 해바라기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농약과 비료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는 그 자체도 목적이지만 물을 저장해 지하수를 만드는 역할도 한다.
대구동네우물되살리기팀은 '미네랄이 풍부한 비텔의 물은 미네랄이 적은 에비앙과 다르다'며 물의 질에 대해 확신하는 비텔시를 뒤로하고 파리를 잠시 곁눈질한 뒤 오를레앙(Orleans)으로 향했다. 오를레앙은 백년전쟁 당시 나라를 구한 소녀 쟌다르크의 고향이다.
녹색에서 녹색으로 이어지는 목가적인 전원 풍경도 계속 반복되니 감흥이 떨어진다. 거대한 포도밭과 가끔 나타나는 풍력발전소, 길 가 나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겨우살이가 우리 일행의 시선을 자주 붙든다. 일행 중 누군가가 "독일에서 두더지를 잡고, 프랑스에서 겨우살이를 채취해 팔아도 굶어죽진 않겠다"고 조크했다.
◆세계적 연구소=파리 남쪽 116㎞ 지점에 있는 오를레앙에는 프랑스 지질광물자원연구원(BRGM)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비슷한 기관으로 지질과 광물, 지하수, 지진 등 지하 관련 R&D(연구개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미국의 지질조사국(USGS)과 캐나다의 천연자원성(NRCan)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오를레앙 외곽에 위치한 BRGM은 환경이 매우 쾌적했다. 비가 내려 공기가 더 상쾌하다. 1천여 명의 연구원은 대부분 주변 전원주택과 아파트에 산다. BRGM 일대는 일종의 연구단지다. 조용한 연구단지는 학자들에게 매력적이라 파리까지 출·퇴근하는 교수들도 함께 산다.
BRGM은 프랑스의 지질과 광물 자원에 대한 모든 자료를 축적해 놓고 있다. 유럽 다른 나라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나라들의 자료들도 다량이다. 특히 근년 들어서는 중국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료를 축적해가고 있다 한다.
BRGM은 앞선 연구개발 능력을 바탕으로 과거 식민지 개척 시대에 자원 수탈의 첨병 역할을 했다. 군대가 진주해 식민지를 만들면 그 땅의 지질과 지하자원을 조사하는 역할은 BRGM이 맡았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BRGM이 세계 에너지-자원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지금도 매한가지다. 국영기업이나 다국적기업 등이 해외의 석유·가스·광물의 개발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지질과 광물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BRGM의 전문가들이 담당하곤 한다.
◆물 연구 활발=지질과 광물이 BRGM의 주 관심사였으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물 사용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물의 질과 양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연구가 핵심이다.
주된 연구 테마는 수자원 관리를 위한 최적화 모델을 만드는 것. 각 지역마다 지하수를 얼마나 뽑아 쓰고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지하수가 얼마인지 조사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는 것이다. 자크 바레 BRGM 전략기획본부장은 "한정된 시간에 지하수를 많이 뽑아쓰면 지하수 고갈 사태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최적화 모델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들은 프랑스 각 지방의 토양과 지질의 특성을 확인하고 지하수를 조사해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물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지형도를 만든다. 이 지형도를 만들기 위해 BRGM 혼자 애쓸 필요가 없다. 국민들은 자기 땅을 10m 이상 파면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이 때 지질의 시료를 채취해 조사한다. 그 조사 결과를 취합하면 전국의 지형도와 수자원 지도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BRGM이 입체적으로 구현해 데이터베이스화한 지형도와 수자원 지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이 덕분에 주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땅을 얼마만큼 파면 얼마만큼의 지하수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대구도 가능=오를레앙에 동행한 권대용 전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장은 "대구도 동네우물을 만들면서 지하수의 양과 질 뿐 아니라 지질까지 면밀히 조사하면 좋은 자료가 되겠다"고 했다. 옳은 얘기다. 대구는 올해 32개의 동네우물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300개의 동네우물을 만들 계획이다. 120m 이상 깊이로 뚫어 500m 반경 안에 1개씩 만든다는 목표다. 그렇게 동네우물을 만들면서 지질, 토양 오염도, 지하수의 양과 질 등을 낱낱이 조사하면 120m 이상을 실측한 지형도와 물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깜깜한 지하가 개략적이나마 시민들의 눈에 보여지는 셈이다. 이 지형도와 물 지도는 각종 건축 행위와 지하수 개발시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최근 실측 지형도와 물 지도는 우리나라에 없다.
◆물 연구 EU 협력=프랑스의 물과 지질 연구는 체계적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잘 협력한다. EU 통합 후 유럽 제 나라 간에도 협력하고 있다. EU 27개국은 식수, 농업용수, 하수에 적용하는 공통 규칙을 마련했다. 그 규칙은 유럽연합의회가 마련하고, 회원국들은 국내법과 함께 공통 규칙을 적용한다. 바레 본부장은 "어제도 유럽 제 나라의 연구원들과 만나 정보를 공유했다"며 "유럽 단일화 후 물과 지질 연구를 공통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BRGM의 또 다른 주요 연구 테마는 지하수 오염 체계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벤자망 페즈 물 연구원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요소와 매커니즘을 이해해야 수질을 보호할 수 있는 예방책을 찾을 수 있다"며 "지하수 질이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공장 지대는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BRGM은 축적된 물 기술을 지금은 프랑스 국내보다 해외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다. 홍보담당자는 "현재 알제리와 이집트에서 지하수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색적인 물탑=높은 건물이 별로없는 프랑스 중소도시나 농촌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축물이 '샤또 도'(물탑)다. 오를레앙에서도 2개의 물탑이 눈에 띄었다. 10m 높이는 족히 될듯한 물탑은 지하수를 퍼올려 뒀다가 압력차를 이용해 낮은 곳에 있는 가정에 물을 공급한다. 수돗물 사용이 많은 시간대에 활용되고, 특히 수도 공사로 수돗물을 공급할 수 없을 때 비상 급수용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프랑스의 95%가 물탑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루아르강(Loire R.) 지류 강둑에 높이 솟아 있는 물탑 옆에서 우리 일행은 물탑의 대구 적용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구 동네우물은 1차적으로 시민들이 직접 찾아 물통으로 길어 마시는 방식으로 수돗물처럼 가정 공급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구 천연암반수의 질이 우수하고 양이 풍부한 것이 확인돼 가정 공급 요청이 커지면 물탑 공급 방식을 적용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다. 이시아폴리스 등 신도시를 조성할 때 이 방식을 쓰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동네우물을 개발해 시민이 즐겨 길어 마시게 하는 것이 우선인 현재로선 다소 먼 얘기일 게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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