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서 화악까지] <31> 육동(六洞) 구간

입력 2010-07-31 08:07:41

산촌 생태체험장·동아임장…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이뤄

육동 구간이 끝나는 맨 남쪽 지점서 뒤돌아본 육동 쪽. 저 멀리 동곡능선, 그 앞으로 육동을 둘로 가르는 중간능선, 더 앞으로 가척리 공간이 보인다.
육동 구간이 끝나는 맨 남쪽 지점서 뒤돌아본 육동 쪽. 저 멀리 동곡능선, 그 앞으로 육동을 둘로 가르는 중간능선, 더 앞으로 가척리 공간이 보인다.

동곡능선을 갈라 보낸 뒤 비슬기맥은 북→남에서 동→서로 본래의 주향(走向)을 회복한다. 그렇게 달리는 거리는 6.5㎞ 정도. 이미 언급된 바 있는 '육동 구간'이다.

'육동'은 이 능선 남쪽에 있는 경산 용성면의 6개 마을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비슬기맥에 붙어 동편에 부일리, 서편에 가척리가 있고, 부일리 남쪽에 용전리-용천리, 가척리 아래에 대종리가 분포했다.

육동의 특징은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용성의 다른 땅으로부터 외돌아져 있다는 점이다. 용성의 다른 물은 '오목천'(烏鶩川)을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가지만, 육동 물은 '부일천'을 타고 '동곡천'에 합류했다가 동창천을 거쳐 밀양강으로 간다. 물길로 보면 청도에 가깝고 행정구역으로 보면 경산에 속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지리적 특성은 그 공간으로 하여금 인문적으로도 어느 정도 독립성을 띠게 할 소지가 있을 터이다. 육동 토박이 주민 대다수가 같은 초등학교 동문 선후배 관계로 묶인 게 예다. 1934년 개교해 60년간 일대의 구심점으로 역할하다가 1995년 폐교한 옛 '용강국민학교'가 그것이다.

육동의 독자성은 외부서도 주목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면 출장소를 따로 설치해 줄 정도였다. 용성면 소재지 마을과 육동을 잇는 면내(面內)도로가 '육동길'로 명명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기도 하다. 곧 보게 될 '비리재'(비오재)는 이 육동길 고개다.

육동 북편담장으로서의 비슬기맥 길이는 6.5㎞나 되지만 10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두 번 정도 100여m 높이를 다시 올라야 하는 구간이 있긴 하나 전체적으로는 내리막인 덕분이다.

바리박산 밑 593m봉 분기점을 출발하자마자 산줄기는 403m재로 190m나 내려앉는다. 거기서 495m봉으로 90여m 오르는 게 다소 부담되지만 곧 다시 410m재로 내려선다. 힘드는 건 이 재에서 다음의 508m봉으로 오르기다. 그러나 그 이후엔 내리막이고, 특히 25분쯤 뒤의 403m봉 이후엔 160여m나 폭락한다.

저 403m봉까지의 구간 남쪽에 자리한 게 부일리(扶日里)다. 서편 가척리(加尺里)와의 경계선은 그 봉우리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가는 지릉이다. 두 마을은 '땅고개'(330m)로 연결되며, 지금은 그 위로 임도가 나 있다.

부일리 구간에서 먼저 주목할 지형은 403m재와 410m재다. '물안재'라 불리는 403m재는 기맥 위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에 논이 개간돼 있어 일단 놀랍다. '임장재'라 지칭할 만한 410m재는 부일리 뒤 불당골과 그 북편의 송림리 후롱골을 연결하는 임도 길목으로, 공원벤치처럼 긴 나무의자들이 놓인 풍경이 독특하다.

하나 이들을 주목하자는 진짜 이유는 딴 것이다. 산을 나무들이나 제 맘대로 살도록 던져둘 대상지가 아니라 인간 삶과 생산의 귀중한 터전으로 인식하게 하는 모범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물안재 남쪽의 부일리 '귀재골'에서는 마침 방금 산촌생태체험장 조성 작업이 마무리됐다. 동곡능선 초입의 화전재 일대에서 본 시설들이 바로 그 일부다. 산림청이 10억원을 지원했으며, 마을서는 도시 가족·단체 등에게 과일·버섯 따기나 산나물 캐기 등 산촌 생활을 체험케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민박과 토속음식 판매 등을 통한 수입을 기대한다고 했다.

'임장재' 너머 후롱골 땅에는 '동아임장'이라는 생산임지가 있다. 산을 들판의 '농장'에 상응할 '임장'(林場)으로 가꿔놓은 99만㎡(30만평)에 달하는 별세계다. 마을에서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을 정도로 관심 밖이었던 410m재에 이 시리즈가 '임장재'라는 새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함번웅(69) 대표에 의하면 35년 전 구입할 때 그 일대는 완전히 벌채된 벌거숭이였다. 산은 투자해 봐야 다음 대에나 소득이 날지 말지 한다는 무망론(無望論)이 지배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함 대표는 7, 8년 만에 확실한 소득을 거둬 보였다. 일반과 다른 구상과 전략을 구사한 결과였다. 오가피, 한약재목, 조경수, 수액채취목, 특수묘목, 산나물 등(현재의 수입순위) 오래잖아 소득을 내주는 '작목'을 선택한 게 그것이었다.

함 대표는 젊은이들에게도 '중기적' 시각을 권했다. 너무 장기적인 생각이나 일이 년 단위의 지나치게 단기적인 시각은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도를 우리나라 특유의 관광자원화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국의 주요 임도를 연결해 산림 속의 휴양코스로 만든다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출한 관광자원이 되리라는 얘기였다.

부일리 구간서 주목해 둘 또 다른 지형은 508m봉이다. 산줄기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면 거기서야 처음으로 평야(용성면 송림리)가 펼쳐져 보여서다. 드디어 바리박산 서편 첩첩산중 매남리 권역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뜻있는 지형인데도 508m봉에는 이름이 없었다. '부일봉'(扶日峰)이라 불러 둬 보자.

부일리 구간 종점인 403m봉을 지나면 비슬기맥이 급락해 25분여 만에 240m재로 떨어진다. 산줄기 남쪽의 가척리와 북쪽의 송림리를 연결하는 시멘트도로가 통과해 존재감이 높은 재다. 일대에는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여러 채의 폐가가 있다. 18홀 크기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 재 일대 지명에 혼란이 생겨 있는 점이다. 국가기본도는 이 자리에 '용림'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표기해 뒀다. 경산시청은 새주소 부여를 위해 북편 송림리서 이 마을을 거쳐 그 아래 가척리 비오재 본마을까지 관통하는 길에다 '용림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때문에 외지등산객 사이에는 가척재가 '용림재'로 통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지 시각은 전혀 달랐다. 240m의 이 고개에 대해서부터 매우 시큰둥했다. 최근에야 길이 났을 뿐, 전에는 넘어 다닐 일이 별로 없어 이름조차 없던 고개라 했다. '용림'이란 마을을 아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재 위 마을은 '못안'이라고만 불러왔다고 했다. 가척리 비오재 마을과 이것 사이에 큰 저수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 저수지 이름이 '용림지'일까 싶어 수소문했다. 마침 20년 전에 제작된 '경북마을지'가 그곳 마을은 '못안', 저수지는 '용림지'라고 기록해 뒀으니 검토해 봐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그것도 아니라 했다. 저수지는 '조고못'이라 부르다가 '율능지'라 바뀌었을 뿐이라고 했다. 국가기본도 또한 '율능지'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용림'은 무엇이란 말일까? 도로명을 만든 사람들은 알려나 싶어 경산시청에 전화했으나 그쪽 정보는 더 흐리멍덩했다. 2005년 용성면 지명위원회서 "그쪽 길의 모습이 용 같아서" 용림로란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길이 어떻게 생겼기에 용 같다는 것일까?

특이하게도 일대에 '용림'이란 이름을 쓰는 지형으로는 240m재에서 700여m 떨어져 있는 '용림재'(310m) 딱 하나가 있었다. 동편 가척리·부일리 등의 사람들이 비슬기맥을 넘어 서편 용성면소재지 마을로 다니던 길목이라고 했다. 자동차시대 이전 아이들은 그걸 넘어 학교에 다니고 어른들은 용성장에 다녔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 이름 중 '용림'이 무엇에서 연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척리는 물론 부일리·송림리·부제리 등 사방의 인근 마을 어르신들은 누구 없이 이 재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했지만, 용림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가리켜 보이지 못했다. 혼란도 거기서 출발된 게 아닐까 싶었다. 일대 생활사에 중요한 그 '용림재'를 지도에 표시한다는 게 엉뚱하게 마을 이름으로 용림을 들먹이게 됐을 개연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짜 '용림재'와의 혼란이나마 피하도록 240m재에 별도의 임시 명칭을 붙여두는 것일 터이다. 아쉬운 대로 '가척재'라는 이름표를 달아 놔 보자. 이 가척재는 비슬기맥 최저 구간의 시점이다. 최고점 높이래야 300m도 채 안 되기 일쑤인 능선이 거기서 시작된 후 12㎞에 걸쳐 이어지는 것이다. 그 모습은 다음번에 살필 몫이다.

저 가척재를 지나고 용림재를 거치면 351m봉에 오른다. 용성면소재지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일대 최고의 전망대다. 큰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용산(龍山·436m)도 지척이다. 맑은 날은 경산 아파트단지와 대구까지 훤하다고 했다. 산불초소가 거기 세워진 이유도 그것일 터이다.

이 지점에서 산줄기는 주향을 다시 바꾼다. 동→서 달리기를 그치고 북→남으로 내려선다. 그럼으로써 비슬기맥은 육동 지구의 서쪽 담장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말하자면 육동의 동편엔 동곡능선, 북편과 서편엔 비슬기맥이 흐르고, 남쪽만 열려 있는 형세다.

글·박종봉 편집위원

사진·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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