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은 무조건 쉬는 '청학식당'. 겨울방학이 있는 '상주식당'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식당(?)'
개미는 근면과 성실의 대명사다. 1년 내내 열심히 일한 뒤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 쉬지 않고 매일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내일을 꿈꾼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미의 근면과 성실을 미덕으로 여긴다.
관점을 한 번 바꿔 보자. 베짱이는 어떨까? 놀고 즐기기만 하는 게으름의 대표주자라기보다 잘 놀고 즐길 줄 안다고 생각해 보자. '인생이란 그저 열심히 일하며 먹고사는 데 충실해야만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아마도 베짱이 쪽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등을 내건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용보다 수입이 조금이라도 많다면 개미의 부지런함쯤은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각오에서 나온 생존전략이리라.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일 년에 한두 달씩은 아예 문을 닫고 휴가를 즐기는 가게들이 있다. 계절 변화에 따른 매출 감소나 재료 부족 등에 허덕이느니 그 기간 동안 재충전과 건강 관리에 신경 쓰는 게 낫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방식이다. 수십 년째 2~6개월의 장기 휴가를 가져온 식당 3곳을 찾아가 베짱이처럼 사는 노하우를 들어봤다.
◆7, 8월은 무조건 쉬는 '청학식당'
'9월 1일부터 영업합니다.'
한여름에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 위치한 대구탕·알탕 전문점인 청학식당에 가면 내려진 셔터에 이런 문구가 붙은 걸 볼 수 있다. 주인 가족은 6월 마지막 주에 식당 문을 닫고 일주일간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경치를 구경하며 그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인 이원형(64)·이순이(59) 부부는 올해로 10년째 7, 8월에는 휴가를 즐기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당연한 휴가라 생각하고 전국의 계곡이나 피서지를 찾아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 단골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수입 없이 쓰기만 하니 불안감도 적지 않았다. 이 씨 부부가 '매년 2개월 휴가'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여름 비수기 때 아무래도 손님이 적고,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에 이미 20년째 쉬지 않고 식당을 운영해왔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최고의 결단이었다.
이원형 씨는 "휴가 때 건강을 관리해 아프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2개월 동안 주변도 돌아보고 하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부모의 식당 일을 돕고 있는 딸 이봉미(33) 씨도 "가족이 함께 어디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닐 수 있어서 좋고, 부모님 건강도 돌볼 수 있어 정말 소중한 휴가"라고 했다.
◆쉬는 기간으로 따지만 최강, '부산 안면옥'
'추석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푹 쉬다 오겠습니다.'
대구 중구 노보텔 바로 옆에 있는 냉면 전문점 부산 안면옥은 1년 중 쉬는 날이 가장 많은 식당을 꼽으라면 전국에서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일 년 중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쉰다고 보면 된다. 식당업을 하는 이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 주인을 만나 보니 답이 나왔다. 평양 출신으로 부산에 피란 왔다 대구에 정착해 이곳에서 부산 안면옥이라는 이름으로 42년째 냉면집을 하고 있는데, 주인의 특별한 철학이 녹아 있었다. 봄과 여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추석 이후에는 해외를 돌며 개인적으로 뭔가 생산적인 탐구를 하는 데 인생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주인 방수영(79)·홍기량(72) 씨 부부는 27년째 해외 각국을 탐방하는 여행 전문가들이다. 27년 전부터 1년 중 절반이 휴가다 보니 해외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방 씨는 일본의 역사나 문화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유래된 사례를 찾는 일, 북미·유럽 등 선진국을 돌며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좋은 사례들을 모아 대구시청이나 유관 단체에 제공하는 일도 하고 있다. 홍 씨는 "교사를 그만두고 냉면집을 연 남편이 참 특이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잘한 선택이고, 휴가제도 너무 좋아요"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재밌는 사실은 식당 종업원들도 이 휴가제에 동참하고 있는 것. 홀에 3명, 주방에 3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직장이 있는 여종업원 3명은 6개월 일하고 푹 쉬었다가 이듬해 4월 1일에 다시 출근한다. 주방장은 휴가 기간에도 소정의 월급을 받는다.
부모의 냉면집을 이어갈 아들 방문진(42) 씨는 "내가 본격적으로 경영하게 되면 휴가제는 그대로 이어가겠지만 기간은 다소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이 있는 '상주식당'
'겨울방학 기간이 휴가라고 보면 됩니다.'
올해로 50년째 대구 동성로에서 영업하고 있는 추어탕 전문점 상주식당. 오래된 전통과 맛이 장점이지만 겨울에 장사 안 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주변의 시청이나 병무청 등 공무원들이 내력을 더 잘 안다. 정확히 30년 전부터 이 휴가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20년 동안은 3개월 반을 쉬다 10년 전부터는 12월 20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2개월여 휴가를 갖고 있다.
모녀가 2대째 이어가고 있는 이 식당은 50년 동안 언제나 싱싱하고 기름진 자연산 논미꾸라지만 고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논미꾸라지가 잡히지 않는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는 아예 식당 문을 닫는다.
주인 차상남(64·여) 씨는 이 기간 동안 문화 생활을 즐긴다. 해외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동생들의 전시회를 찾아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을 돌아다니며 여행과 함께 문화적 욕구도 채운다. 차 씨는 "일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휴가 기간에 싹 사라진다"며 "1년 내내 식당을 하며 돈을 버는 것보다 2, 3개월씩 쉬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주식당의 휴가는 영업을 위한 준비기간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집들과 다소 달랐다. 2월부터 맛있고 신선한 추어탕을 내기 위해 각종 재료들을 준비하고 양념을 만들고 장을 담그는 등 휴가 후에도 본격적인 영업을 위해 문을 닫은 식당 내부는 부지런히 돌아가는 것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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