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와야 닭 한 마리를 잡을 수 있고, 고기라면 명절이나 잔치 때나 맛볼 수 있었던 우리 선조들은 여름 한 철을 보내고 난 허기와 피로를 어떻게 달랬을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서민들로서는 자연이 주는 혜택에 의존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데, 이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만한 게 미꾸라지다.
농촌에서는 여름이 지나면 논에서 물을 빼고 논 둘레에 도랑을 파 살찐 미꾸라지들을 잡아 국을 끓였다. 추어탕은 동네 잔치를 여는 훌륭한 소재가 됐으며 마을 어른들에게 가장 먼저 대접하는 풍습도 있었다. 동물성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 등이 풍부한 미꾸라지는 사람이 살고 성장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요즘은 미꾸라지가 예전보다 흔해 계절 관계없이 추어탕을 맛볼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다.
미꾸라지에 들어 있는 지방은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건강식으로 그만이다. 또한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성분이 풍부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A 함량도 높아 성장기 청소년에게도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에서는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며 양사(陽事)에 좋다'고 해 정력제로 꼽기도 했다.
서민들의 음식인 탓인지 문헌에는 추어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려 말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추어탕이 처음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서민들이 강이나 논에 흔한 미꾸라지를 훨씬 이전부터 먹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추두부탕이 소개돼 있는데, 조리법이 흥미롭다. 물 속에서의 움직임이 빠른 만큼 급한 미꾸라지의 성질을 잘 보여준다.
'미꾸라지를 항아리에 넣고 하루에 3회 물을 바꾸어주면서 3~6일 지나면 진흙을 다 토해 낸다. 솥에다 두부 몇 모와 물을 넣고 여기에 미꾸라지 50~60 마리를 넣어 불을 때면 미꾸라지는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더 뜨거워지면 미꾸라지는 약이 바싹 오르면서 죽는다. 이것을 참기름으로 지져 탕을 끓인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푹 삶아서 으깨 끓이거나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경상도에서는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 데친 풋배추, 고사리, 토란대, 숙주나물, 파, 마늘 등을 넣고 끓이다가 나중에 홍고추, 풋고추를 넣어 끓인 다음 먹을 때 초핏가루를 넣는다. 전라도에서는 미꾸라지를 된장과 들깨즙에 넣어서 걸쭉하게 끓이다가 초핏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낸다. 서울에서는 곱창이나 사골 국물에 두부, 버섯, 호박, 파, 마늘 등을 넣어 끓이다가 고춧가루를 풀고 미리 삶아 놓은 미꾸라지를 넣어 끓인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뼈와 내장까지 통째로 삶기 때문에 영양 손실이 전혀 없다.
걸쭉한 국물과 풍성한 채소에 뼛조각이 가끔씩 씹히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추어탕으로 여름 더위를 이겨 보자.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참고:우리 음식 백 가지, 조선시대의 음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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