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측근들의 정치적 운명'

입력 2010-07-27 07:00:21

8년 전 이맘때쯤으로 기억난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실의 박영준 보좌관이 행사 참석을 위해 기자와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대뜸 책 한 권을 추천했다. '너무나 인간적인'(ALL TOO HUMAN)이란 제목의 번역서인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핵심 참모 조지 스테파노풀러스의 기록물이다. 박 보좌관은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어봤다며 일독할 것을 권한 뒤 자신도 "그런 일을 해 보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2002년 대선 정국이 뜨거워지고 있던 때 얘기다.

그리고 5년 만에 꿈은 이뤄졌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 승리를 이끌어 냈고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발탁됐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지, 그 순간이 얼마나 값진 시간들이었는지 알게 됐다"며 감격했던 스테파노풀러스의 심정을 어느 누구보다 공감했을 것도 같다.

두 사람은 닮은 점들도 많아 보였다. 연배가 거의 같으며(현재 50대 초반),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고 대선 캠프에 들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것 등등… 대선 후 스테파노풀러스는 백악관 대변인, 박 보좌관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정부 출범 후 겪게 되는 상황도 흡사해 보였다. 스테파노풀러스는 권력 내부의 견제 속에 대변인을 반년도 못 채우고 정책전략 수석고문이란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실제로는 백악관 내부의 주요 현안 논의에 참석,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핵심 참모로서의 역할을 계속했다. 이 때문에 권력 내부는 물론 야당에서도 그에 대한 견제 혹은 비난들이 잇따랐고 결국 백악관을 떠나게 된다. 박 보좌관이 청와대 비서관에서 물러날 당시에도 비슷한 비난들이 적잖게 들렸다.

다른 점들도 눈에 띈다. 스테파노풀러스는 박 보좌관보다 16년이나 빨리 대선 캠프에 뛰어들었기에 클린턴 정부의 참모로 활동했을 때도 3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했다. 그만큼 의욕이 강했을 것이고 책에도 언급됐듯이 업무 추진 과정에서 실책을 범한 측면들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클린턴 1기 정부 4년을 마칠 때까지 백악관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며 떠날 때도 대통령의 잔류 요청 때문에 고심해야 했다.

그러나 박 보좌관의 경우 정책 문제가 아니라 여권 내 권력다툼 파문에 휩쓸리면서 비서관 자리를 4개월 만에 떠나야 했고, 7개월여 잠행 끝에 작년 초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으로 컴백했으나 1년 반 만에 또다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야권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를 영포회에 이어, 이 대통령의 대선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로 연결지으며 그를 핵심 인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출범한 지 3년도 안 돼 두 차례나, 그것도 권력 농단 의혹에 휩쓸려 퇴진 위기에 처하게 된 셈이다.

박 국무차장은 각종 의혹들을 일축하며 고소 등으로 맞대응하고 있으나, 만만치 않은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실 YS와 DJ 때를 비롯해, 역대 정부에서 핵심 측근들의 정치 생명은 대체로 짧았으며 공식적인 직책에는 아예 다가서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운 좋게 정치적 공세를 버텼다고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들 중 일부는 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에 시달렸고 정치 2선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DJ 정부 출범 직후에는 측근 인사 몇몇이 기자회견을 자청, 공직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나중에 허언이 되기는 했지만)

측근들의 정치적 단명은 어쩌면 운명적일 것 같기도 하다. 측근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치적 공세의 표적이 돼야 하고,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은 과연 끊을 수 없는 것일까?

내달 초로 예상되는 개각을 앞두고 박 국무차장의 거취에 지역민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봉대 서울정치팀 차장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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