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미술의 향기] 고요와 침묵, 그리고 별…

입력 2010-07-27 07:38:15

▲제작 연대 미상(1950~60년대 추정), 종이에 크레용. 강운섭 \
▲제작 연대 미상(1950~60년대 추정), 종이에 크레용. 강운섭 \'유성이 있는 밤 하늘\'

◆강운섭 '유성이 있는 밤 하늘'

대자연에서 눈을 돌려 소박한 주변 풍경으로, 근린생활의 묘사에서 다시 개인들의 사적 공간으로. 근대미술에서 화가의 시선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마침내 심리적인 내면 공간을 향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인상파 이래 마티스의 특정한 주제에 이르면 가장 빈번한 모티프가 실내 생활의 단편을 기록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림이 현실의 구체적인 사실들보다 정서나 감각을 담는 데 아주 적합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록과는 구별된다.

이 작품에서처럼 방안에서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총총했던 밤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느 날의 덧없는 감정이지만 문자나 그 밖의 어떤 매체에 의한 기록보다 강력한 힘으로 과거 한때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 생생한 재현 능력은 우리를 감상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고 여러 가지 매체 특유의 속성에 대해 주목하게 함으로써 동시에 미를 함께 느끼게 한다.

사방 온통 검은 어둠 속에 묻혀있지만 암흑에 적응된 눈은 서서히 드러나는 사물의 형체들에서 어느 새 희미하게 부각되는 모습들의 이모저모를 찬찬히 살피게 하며 열린 공간을 따라 밖을 향해 시선을 옮겨가게 한다. 그때 막 유성이 흐르고 그 뒤로 별이 총총한 창공을 만난다. 색채는 검고 짙은 고동색과 군청, 청색과 유성의 꼬리를 표현한 붉은 색이 전부다. 텅 빈 고요와 침묵이 지배하는 한편에 밝게 빛나고 있는 별들로 푸른 박명의 하늘이 펼쳐지는데 막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는 순간이 극적이다.

구성은 네모진 방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풍경이 사각의 그림틀을 반향하고, 울타리의 경계에 막혀 생긴 앞마당, 전면을 가로막는 높은 담장이 시야를 제한시킨다. 그 위로 역시 창틀처럼 하늘이 열려 있다. 키가 다른 판자 담장의 고르지 못한 높이와 그 위로 보이는 함석처마 끝의 파상문이 반복되는 사각형의 구성에 유일한 리듬을 만들며 변화를 주고 있다.

명상에 잠겨 응시한 밤하늘에서 별빛이 주는 몽롱한 꿈과 희망의 상징을 본 작가는 모방적인 사실주의를 넘어 자연스럽게 표현주의적인 양식에 가 닿게 된다. 형태의 왜곡이나 심리적인 동요의 표현보다 생각의 저변으로 침잠하며 끈기 있고 치밀한 묘사를 했다. 시대적 가난에 수반된 청빈한 정신의 자유가 느껴진다.

대전이 고향인 작가는 6'25 때 피란 내려온 대구에 정착하게 되었다. 궁핍한 시절 켄트지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단색화에 가까운 색조와 소박하고 단순한 평면적인 묘사가 오히려 세련된 표현의 작품이 되었다. 바탕 면은 수많은 단속적인 터치의 손질 자국으로 마치 잘 섞어 짜인 거친 피륙의 조직 같은 촉감을 나타낸다. 김영동(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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