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엔 '형사'가 산다

입력 2010-07-24 08:00:00

전직 경찰 출신으로 대구 동촌초교
전직 경찰 출신으로 대구 동촌초교 '배움터 지킴이'를 하고 있는 조도석 씨가 20일 오후 방과후 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바래다 주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0일 오전 8시 대구 동구 방촌동 동촌초등학교 정문. 정장 차림에 노란색 조끼를 걸친 초로의 신사가 등교하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서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다 들어가고 나서야 현관 1층 행정실 옆에 마련된 책상 앞에 앉았다. 동촌초교 배움터 지킴이인 조도석(58) 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곳은 여름방학이지만 방과후 수업을 위해 전교생의 절반인 600여 명이 등교하고 있다.

"처음엔 이상한 아저씨인가 싶어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먼저 인사도 하고 잘 따릅니다. 물론 말썽을 부리면 누구보다 무서운 선생님이 되지만요."

조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 학교의 배움터 지킴이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의 전직은 형사다. 27년을 정보 외근 형사로 활동했고, 지난해 2월 명퇴(경감)할 때까지 12년간 대구시교육청을 담당했다.

그는"학교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똑 소리나게 자기 주장을 하고 3, 4학년때부터 사춘기가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아 통제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또 아이들이 '짱' 자리를 놓고 패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선후배끼리 무리지어 다니면서 폭력 서클을 흉내내는 등 학교 담장 안팎의 치안이 생각 이상으로 허술하다고 했다.

"교실내 도난 사고 때문에 여선생님들이 체육수업 때 손가방을 메고 운동장에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동촌초교는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니는 주민들이 많아 낯선 사람들의 출입이 잦다. 인근 중학생들은 담을 넘어와 말썽을 부리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전체 교사 49명 중 남교사가 4명에 불과해 학생 지도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왕년의 정보형사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부임 후 3개월째, 담임 선생님들의 협조를 받아 평소 말썽을 부리는 학생 20여 명의 명단을 받았다. 아이들을 교내 4층 배움터 지킴이 사무실로 소집했고 잘못한 일들을 조서 쓰듯 기록하게 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다시 적게 했다. 그러자 학생 3명이 담배를 핀다고 실토했고 반 아이들을 괴롭힌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울려 다니는 선후배들과의 '계보'를 적어내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내에서 싸움을 벌인 남녀 학생 7명을 고구마 엮듯 차례로 불렀다. "주동자격인 학생은 일부러 맨 나중에 불렀어요. 일종의 심리수사 기법인데, 그래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반성도 깊게 하거든요."

자신들을 예의주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부쩍 몸가짐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하굣길에 한 학생이 5천원을 빼앗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인근 중학교 배움터 지킴이와 '공조수사'를 벌여 범인을 잡았다. 그는 "같은 경찰 출신이다 보니 협조가 잘 됐다"고 했다.

조 씨와 같은 전직 경찰 출신은 배움터 지킴이로 인기가 높다. 그는"배움터 지킴이 중에 70%가 경찰, 나머지가 전직 교사나 군인 출신"이라며 "교통 법규나 경찰·검찰 업무에 밝아 유사시에 자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조 씨와 같은 배움터 지킴이는 현재 대구시내 160개 초·중·고교에 한 명씩 배치돼 있다.

시교육청은 연내로 전체 334개 초·중·특수학교에 확대 배치할 계획이다.

1학년 학부모인 송수진(32·여) 씨는 "낮에 아이를 데리러 왔더니 중학생 아이들이 학교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면 고맙겠다"고 바랬다.

조 씨는 오전 8시에 출근, 오후 4시까지 지킴이 활동을 한다. 1년 넘게 하굣길 학교 밖 순찰을 돌다보니 인근 문구점, 분식점 주인들과도 친해졌다. 한 달 20일 근무에 월급은 60만 원. 많지 않은 돈이지만 내 손자 손녀를 돌본다는 사명감을 갖고 근무한다고 했다.

"최근 교내 순찰 활동이 대폭 강화됐어요. 우리 학교 경우 선생님들이 2인 1조로 오전·오후 네 차례 순찰을 돕니다. 방문자 명찰을 달지 않은 사람이 교내에서 활보하기란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교내 CCTV 경우 설치는 잘 돼 있지만 고정적으로 지켜보는 인력이 부족해 운영상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테이프 방식이어서 화면도 흐릿하다. 조기축구, 조깅으로 늘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면서도 학교 방범에 동참해달라고 하면 바쁘다며 손사래 치는 주민들이 섭섭하다고 했다.

"지킴이 일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안전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사, 경찰관에만 맡기지 말고 이제는 이웃과 지역 사회가 나서야 해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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