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③'동물원 효과' 아사히카와시

입력 2010-07-23 08:01:10

폐쇄직전 동물원이 도시 브랜드 이끌었다

동물원 하나가 도시의 가치를 어느 만큼 높일 수 있을까?

가족·친구끼리 소풍가는 자그마한 동물원이 도시의 이미지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너무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홋카이도 아사이카와시(旭川市)에 자리잡은 아사이야마(旭山) 동물원은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신화를 만든 곳이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동물원으로 가는 길

아사이카와는 삿포로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린다. 홋카이도의 두 번째 도시이고 교통의 요지라고는 하지만 인구 36만명의 중소도시일 뿐이다. 인근에 온천, 골프장, 국립공원이 있지만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관광자원이 그다지 풍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뭘까.

아사이카와 역앞 버스정류장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동물원행(行)이라고 적힌 버스 정류장 앞에는 20여 명이 길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원을 보러가는 관광객들이다. 시내버스로 30여 분을 가니 나지막한 산(旭山) 등성이에 동물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했다. 매표소와 주차장, 출입구, 기념품 판매소는 여느 동물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부지도 14만8천600㎡로 대구 달성공원(12만7천㎡)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한해에 300만명이 찾는 명소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입구부터 썩은 듯한 동물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사육장이 이곳 저곳 흩어져 있을뿐, 두드러진 상징물도 없다.

가장 유명하다는 펭귄관부터 찾았다. 위쪽 사육장에서는 자그마한 펭귄이 물밖에 나와 놀고 있지만 그 지하로 내려가면 투명한 터널위로 펭귄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터널속 관람객의 머리위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날으는 펭귄'이다. 얼핏 그리 장엄하다거나 대단한 광경이 아닌 듯 느껴졌다.

맹수관에 가니 사자와 표범을 채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맹수라면 사육장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관람하는게 보통인데 유리창을 통해 바로 눈앞에서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 동물원의 대변신

바다표범관 주위에는 수백명의 관람객이 빽빽이 모여 시끌벅적했다. 마이크를 귀에 꽂은 사육전시사(이곳에선 사육사가 아니라 사육전시사라고 불린다)가 등장해 관람객에게 설명을 시작하자 장내는 조용해졌다. "바다표범은 물고기를 던져주면 반드시 대가리부터 먹습니다. 꼬리부터 삼키면 목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사육전시사가 꼬리쪽으로 물고기를 계속 던져주자, 바다표범은 계속 뒤집어서 대가리부터 입에 넣었다. 관람객들은 '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하루에 2, 3차례 사육전시사의 설명이 있다고 한다.

달성공원이나 한국의 동물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똑같은 동물인데 이렇게 달라보일 수 있을까.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을 대단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바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진을 안내한 동물원 직원 구치마치 카주유키(34) 씨는 "'인간과 동물의 소통'이라는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컨셉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도 한때 폐장 직전에 내몰린 부실한 동물원이었다. 1967년 개장했지만 얼마후부터 관람객 수가 급감하면서 계속 적자를 냈다. 시청에서 민간에 매각을 검토했지만 사려는 곳이 없어 포기했다. 1990년대 후반 동물원에서 내쫓겨내야 할 위기에 놓인 사육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살아 움직이는 동물원을 만들자'고 결의했다. '행동 전시'의 출발점이었다.

'원숭이 동산'에는 원숭이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유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꿀을 발라놓았고, 기린의 먹이통을 관람대 바로 앞에 설치했다. 북금곰은 큰 플라스틱 원통안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만져가며 볼 수 있도록 했고, 늑대와 여우는 사육장에 돌출된 유리창을 통해 코앞에서 관찰하도록 했다. 사육사는 동물을 키우는데 그치지 않고, 마이크를 들고 직접 동물의 특성의 설명하는 가이드로 나섰다. 시청도 직원들의 열성에 감동해 시설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러자 입 소문이 퍼지기 시작, 일본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고 해외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려는 이들로 넘쳐났다. 한산한 동물원이 인파로 미어터지는 명소로 변신한 것은 직원들의 창조적 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동물원의 가치는?

이 동물원으로 인한 경제적인 파급 효과는 얼마나 될까. 시청에 문의했더니 2006년 단 한차례 조사를 했을뿐 그후에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람객이 206만명이던 당시에는 직접 파급효과 134억3천억엔, 간접 파급효과 58억7천억엔으로 나타났다. 2006년의 경제적인 효과가 193억엔(2천684억원)이었던 만큼 현재는 240억엔(3천338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동물원이 시 전체의 관광 활성화에 엄청난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388만명이던 한해 관광객 수는 동물원이 널리 알려진 2006년에는 697만명으로 뛰었고, 2007년에는 733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사이히카와시 경제총무과 쿠마가이씨는 "동물원이 전국적으로 아시히카와의 이름을 알리고 도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우리 동물원은 홋카이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보고가는 곳"이라고 했다.

동물원 하나로 인해 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진 사례를 보게 된다. 비단 동물원에 국한된 일일까. 지역에서도 차별적이고 창조적인 발상으로 명소를 만든다면 또다른 신화 창조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아사이카와에서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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