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경북을 걷다]<30>울릉 해안산책로

입력 2010-07-21 08:09:30

소라계단·무지개다리 사이로 수십m 절벽길 '후들'

장이규 작-저동항 도동등대(행남등대)에서 바라본 저동항의 모습.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가에 산그림자가 드리우고, 연무에 휩싸인 울릉 저동항의 모습은 숨은 듯 가까이 다가선다. 저동항을 지키는 촛대바위가 유난히 외로워 보인다. 그림처럼 울릉의 산세는 가파르기 그지없다. 해안을 따라 난 좁은 오솔길 외에는 달리 발걸음을 내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삶을 이어간다. 또렷한 초록의 색채만큼이나 활력이 넘친다. 장이규 화백은
장이규 작-저동항 도동등대(행남등대)에서 바라본 저동항의 모습.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가에 산그림자가 드리우고, 연무에 휩싸인 울릉 저동항의 모습은 숨은 듯 가까이 다가선다. 저동항을 지키는 촛대바위가 유난히 외로워 보인다. 그림처럼 울릉의 산세는 가파르기 그지없다. 해안을 따라 난 좁은 오솔길 외에는 달리 발걸음을 내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삶을 이어간다. 또렷한 초록의 색채만큼이나 활력이 넘친다. 장이규 화백은 "여러 차례 울릉을 찾았지만 이번처럼 파도가 잔잔한 적은 보지 못했다"며 "하얀 포말이 없는 바닷가의 모습이 다소 생기를 잃은 듯 보이지만 바다와 산의 초록이 서로 맞닿은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고 했다.
깎아지른 절벽에 그나마 데크길을 낸 덕분에 산책이 가능하다. 절벽 뒤편에 도동항이 숨어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그나마 데크길을 낸 덕분에 산책이 가능하다. 절벽 뒤편에 도동항이 숨어있다.
사실 울릉도 주변에는 물고기가 별로 없다. 갯바위 낚시꾼들도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사실 울릉도 주변에는 물고기가 별로 없다. 갯바위 낚시꾼들도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해안길을 걷던 장이규 화백이 절벽을 등에 지고 서서 출발점인 도동항을 바라보고 있다.
해안길을 걷던 장이규 화백이 절벽을 등에 지고 서서 출발점인 도동항을 바라보고 있다.

울릉(鬱陵)에서 한자 '울'은 '울적하다'는 의미와 함께 '울창하다'는 뜻도 지녔다. 워낙에 원시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숲이 울창한 바다 위 구릉이라는 뜻으로 '울릉'이라 불렸으리라. 독도를 일컬어 '한반도의 막내'라고 부르지만 실제 나이를 따져보면 울릉도나 제주도보다 한참 형뻘이다. 제주도가 120만 년 전, 울릉도는 250만 년 전 형성된 데 비해 독도는 460만 년 전 용암분출로 생겨났다.

청동기시대(BC 1천~300년) 또는 철기시대(BC 300년~AD 1년) 것으로 추정되는 지석묘, 무문토기, 갈돌, 갈판 등이 발견됐다고 하니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배를 타고 울릉으로 향하는 동해에서 문득 궁금증이 도졌다.

도대체 수평선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건너편에 숲이 우거진 섬이 있음을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찾은 것일까? 동행한 장이규 화백은 "40년 전 처음 울릉도를 찾았을 때 12시간 배를 탔다"며 "옛날 나무배를 타고 왔을 때엔 2, 3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 섬을 비우는 정책을 펴면서 울릉 주민들을 육지로 귀환시켰다가 고종 20년(1883년) 7월 개척민 16가구 54명을 다시 섬으로 보냈다. 울릉도는 순풍을 만나면 이틀이면 도착하지만 운이 나쁘면 나흘씩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세상은 변했고, 울릉 가는 뱃길은 3시간 정도면 충분해졌다. 물론 파도가 거친 날은 좀 더 시간이 걸리지만 취재진이 갈 때는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오늘 걷는 길은 울릉의 관문인 도동항에서 출발한다. 도동에서 배를 내려 여객선터미널 뒤편을 보면 '도동등대 해안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굽이 도는 계단을 만난다. 깎아지른 화산 절벽 옆으로 난 산책로가 절묘하다. 울릉을 찾은 많은 손님들이 이 길을 한 번쯤 찾는다. 안타깝게도 해안길을 따라 10여 분 남짓 걷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행남해안길'로도 불리는 이 구간은 최소한 도동등대(또는 행남등대)까지 걸어봐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등대에서 다시 저동까지 걷는 길은 울창한 숲과 함께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저동항의 호젓한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의 백미로 꼽힌다.

울릉 사람들은 곧잘 "섬이 조금만 컸어도 참 좋았을 텐데"라고 말한다. 나리분지를 제외하고는 평지를 찾아볼 수 없는 화산섬. 워낙 산세가 험하고 거칠다 보니 일주도로도 아직 개통되지 못했다. 사람 디딜 땅조차 부족한 것을 아는지 식물들도 자리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뻗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화산암의 틈새마다 온갖 풀이며 꽃, 나무가 가득하다. 새삼 식물의 강인함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더 독하다. 식물은 뿌리만 내리면 비와 햇볕이 키워주지만 사람은 어디 그런가. 옛 우산국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고종 때 개척민으로 처음 울릉도를 찾은 54명의 생활상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당시 구산포(울진군 기성면 구산리)를 출발한 배는 울릉의 서쪽 끝인 태하에 닿았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농사 지을 땅 한 뼘 찾기 힘들었던 개척민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태백산 줄기와 비슷한 산골짜기로 깊숙이 들어갔고, 가파른 산을 넘어 나리분지에 닿았다. 기록상 이들이 울릉에 도착한 때는 7월.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혹독한 울릉의 첫 겨울을 보냈으리라.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초봄 양지바른 곳에서 이들이 찾은 먹을거리는 바로 산마늘이었다. 태백산에서 화전을 일구던 이들에게 산마늘은 귀중한 식량이었다. 그런 식물을 발견했으니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산마늘이 나중에 울릉 특산물이 된 '명이나물'이며, 사람을 구했다는 뜻에서 '목숨 명'(命)이 들어간 것이다.

산책로 갈림길마다 오기동이(울릉을 상징하는 오징어 캐릭터)가 남은 거리와 방향을 알려준다. 속이 말갛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바닷물에 한 번 탄복하고, 연보랏빛 해국의 가냘픈 듯 강인한 자태에 두 번 놀라면서 한참을 오르내리면 오기동이가 '도동등대'를 가리킨다. 등대 뒤편 전망대에 올라서 북편을 바라보면 어업항인 저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물안개 속에 다소 뿌옇게 보이는 섬은 주민 한 명이 살고 있다는 죽도다. 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해진다. 등대길에서 저동으로 가는 길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따금 갯바위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보이지만 수확은 그다지 신통찮아 보인다. 워낙 물이 맑은 탓에 섬 주위에는 별로 물고기가 없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등대에서 내려서 야트막한 고개를 넘고 나면 바로 눈앞에 저동항이 펼쳐진다. 하지만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수십m 절벽을 내려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소라계단. 무려 아홉 바퀴를 돌아내려오는 철제계단은 아찔하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다리가 후들거릴 법하다. 저동항까지는 무지개다리로 이어져있다.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을 다리 난간에 칠해놓았다.

얼핏 번잡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갈매기는 낯선 사람이 지나가건 말건 태무심이다. 그래도 객지 사람이 찾아와 번잡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며 한마디 건넸더니 들은 척 만 척 머리를 획 돌린다.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모양새를 보니 외톨이이거나 나름 명상에 잠긴 모양이다. 저 멀리 저동항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촛대바위가 보인다. 어느 곳에나 애달픈 사연 하나씩은 있게 마련. 고기잡이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홀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이 때문에 효녀바위로도 불린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바로 저동항이다. 아직 오징어잡이 성어기가 아니어서 고깃배들이 항구에 가득하다.

울릉을 제대로 보려면 육지와 바닷길을 일주한 뒤 도동에서 등산로를 따라 성인봉을 넘어 나리분지에 가봐야 한다. 비록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울릉의 아름다움은 오밀조밀하고 다소 서투른 맛에 있다.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벌써 대여섯 번 다녔다는 장이규 화백은 "올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며 "몇 해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울릉군청 공보계 반재석 054)790-6064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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