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영화 '맨발의 꿈' 박희순

입력 2010-07-15 14:00:24

"매번 재발견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번 주부터 '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코너를 신설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에서 연예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장주영 기자가 각 분야 스타 연예인들과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기존 연예뉴스에서 알기 힘든 스타의 생활과 고민,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틴풍으로 편곡된 '엘비라 마디간'이 흐르고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르헨티나의 이름 모를 카페도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잠시 상상에 잠겼다. 그날 카페에는 여남은 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모두 한 사람을 위해 자리한 이들이었다. 그는 연방 담배를 피웠고,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의 모습에서는 생과 사를 오가는 무서운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하는 냉혈한 장민철 PD(영화 '10억')나, 내성적인 성격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자살중독자 김병희(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 증권가의 주식 사기꾼인 작전세력의 지휘관 황종구(영화 '작전')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음씨 좋은 착한 형의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영화배우 박희순이었다.

#실제 성격은 세지 않아요

"영화 속에서 주로 센 역할들을 맡아 성질이나 성격이 좀 더러울 것같이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웃음) 센 역할을 할 때는 온전히 연기를 하는 것뿐인데요. 평상시의 저는 전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사실 '세븐데이즈' 때도 세기는 했지만 인간적으로 멋졌고,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도 연약하지만 사랑스러웠잖아요. 이번 '맨발의 꿈'의 김원광은 자기 꿈을 통해 성장해가는 캐릭터라서 보면 볼수록 애정이 갈 거예요. 참 인간미가 풍기는 인물이거든요."

박희순은 영화 '맨발의 꿈'에서 자신이 맡은 김원광이란 인물에 대해 정이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랬다. 영화 속 김원광은 한때 촉망받는 축구스타였다가 현재는 사기꾼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생의 막바지까지 간 인물. 그러다 내전의 상처로 물든 동티모르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다. 바로 축구라는 것으로 말이다.

#상업영화 최초 유엔본부서 시사회 개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티모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를 겁니다. 저 또한 그냥 위험한 지역이라는 정도만 알고 촬영을 떠났으니까요. 막상 도착해서 보니 우리 민족과 많이 닮았더라고요. 우리가 일제강점이나 한국전쟁 등의 어려움을 이겨냈듯 동티모르 사람들도 내전 등으로 힘든 상황을 겪으며 많은 한을 안고 있더군요. 그 때문인지 눈물이 많은데, 희한하게도 그 속에 웃음과 해학이 묻어 있어요. 정말 우리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에 여러 진기록(?)을 남겼다. 동티모르에서 만든 최초의 극영화가 됐고,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은 최초의 동티모르 출신 영화배우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 상업영화로는 최초로 유엔본부에서 시사회를 개최해 세계적인 이슈를 낳기도 했다. 이런 모든 최초 기록 중 박희순이 꼽는 최고는 아이들이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매일 옆구리에 아이들을 끼고 다니고 싶다며 깊은 애정을 보였다.

#동티모르 아이들 연기 하나하나가 감동

"'맨발의 꿈'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나라 아이가 아닌 동티모르 아이와 영화를 찍었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슬럼 독 밀리어네어'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전문배우가 아닌 이들의 날것 같은 연기가 참 신선합니다. 동티모르는 영화를 만든 적도 없고 배우란 직업도 없었던 곳이에요. 처음에는 살짝 걱정했지만 막상 그게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 뿜어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연기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에요."

그는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신이 난 모양이었다. 다른 얘기를 할 때보다 한 톤 정도 들뜬 목소리에 표정 또한 상기됐고, 즐거웠던 촬영 때가 떠오르는 듯 연방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을 이렇게 좋아하는 그. 갑자기 그의 나이가 불혹을 넘은 것이 떠올랐다.(박희순은 197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41세다) 덩달아 아직 '품절남'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 또한 궁금해졌다.

#올해 41살, 인연 아직 못 만나 미혼

"음….(박희순은 답을 하기 전 10초는 뜸을 들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인연을 못 만난 거죠. 사실 제가 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웃음) 어쨌든 인터뷰할 때마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 우선 올해는 어려울 것 같고요. 이 나이에 이상형을 말하는 것이 웃기지만 밝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계속 쑥스러운 듯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영화 속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박희순이 아닌 인간 박희순의 수줍은 모습이 새롭게 또 정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혹시 '방자전' 류의 영화에서 제의가 들어와 베드신을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안 그래도 최근에 '방자전' 봤는데요. 아주 시원하게 잘 봤어요.(웃음) 저는 베드신은 못할 것 같아요. 극중이지만 실제 내 여자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데,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보는 촬영장에서 베드신을 한다고 상상하면, 아이고 손이 벌벌 떨릴 것 같네요."

#꿈?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어요

'손이 벌벌'이라는 표현에 빵 터졌다. 성격파 배우로 충무로에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배우 박희순에게 이런 모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박희순이 담배를 다시 빼물었다. 벌써 네 개피째. 정해진 인터뷰 시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그의 꿈이 궁금했다.

"꿈?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어요. 지금 제 나이가 20대였으면 '뭐가 되겠다'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지만 40대가 되다 보니 그냥 연기를 계속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계속 발견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스스로 '내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요. 또 남이 안 해본 것에 도전해보고 싶고 안정되거나 탄탄하지 않을지라도 모험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게 가장 큰 기쁨이거든요. '박희순의 재발견'이란 얘기를 계속 듣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semiang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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