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일이 초복이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보양식은 다양하지만 예로부터 서민들의 여름나기는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다. 쇠잔한 체력을 보충해줄 영양분이 중요했지만 당장 더위를 잊게 해 줄 시원함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서민들에게 보신과 시원함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음식은 바로 콩국수였다.
어쩌면 콩국수는 서민들이 잡초처럼 질긴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보탬이 되는 음식이었을지 모른다. 육류나 지방에 담긴 영양소보다 식물성 단백질인 콩이 인체에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고기가 넘쳐나는 현대인들이 고기보다 콩으로 만든 두부나 콩나물, 된장 등을 더 먹으려 애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리라.
콩국수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19세기 말에 나온 '시의전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너무나 보편화된 음식이라 굳이 문헌에 기록할 필요가 없었으리란 추측이 더 설득력이 있다. '콩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걸러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채소 채친 것을 얹는다.' 콩국수를 소개한 첫 문헌인 시의전서에 나오는 콩국수 만드는 법이 간단한 것도 신빙성을 더한다.
시의전서에는 콩국수와 함께 깨국수 만드는 법이 소개돼 있는데, 아무래도 양반들이 여름에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깨를 볶아 물을 넣고 간다. 체에 걸러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춘다. 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채소 채친 것을 얹는다.'
깨국수를 양반 음식이라 한 것은 보통 닭을 삶아 만들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여름 시식(時食)으로 '밀로 국수를 만들어 청채와 닭고기를 섞고 백마자탕(白麻子湯)에 말아먹는다. 또 미역국에 닭고기를 섞고 국수를 넣어 물을 약간 쳐서 익혀 먹는다'고 소개돼 있다. 서민들이 먹기엔 부담스럽다.
깻국탕은 임자수탕이라고도 했다. 깨를 볶아 간 다음 식혀 놓은 닭 국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간을 맞춰 깻국을 만든다. 고명으로 달걀 지단과 채소를 얹는다. 여름에는 깻국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밀국수를 말아서 먹기도 했다.
국수를 뽑아 삶은 뒤 찬물에 건져내는 국수도 많이 먹었는데, 두 가지 형태가 흔했다. 장국에 말아서 먹는 게 보통이었고, 꿀을 탄 오미자국에 마는 국수도 있었다. 장국은 약수를 떠서 그저 간장만 풀고 국수를 말아 먹었는데 물맛이 좋은 곳에서는 육수 국물보다 장국이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동 지방에는 여름철 음식으로 '건진국시'가 유명하다.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식혀 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양반의 허세를 풍자한 탈춤 마당에서 유래된 음식이라고 한다. 법도를 중시하는 안동에서는 가난한 양반집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푸짐한 음식이 없어도 건진국시 정도는 대접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한다.
안동 건진국시는 낙동강 지류에서 잡히는 은어와 어울려 독특한 맛을 낸다. 콩가루와 밀가루를 반죽해 가늘게 썬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헹궈 온기가 빠지면 은어 달인 물에 말아 애호박, 실고추, 달걀 등을 얹고 맨 위에 은어 회를 올려야 제격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참고:우리 음식 백 가지,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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