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누워만 산 지 6년…' 희귀병 앓는 신현창 씨

입력 2010-07-14 09:17:44

'다발성 홍반성 구진'

희귀 난치성 질환인 다발성 홍반성 구진으로 걸을 수도 없는 신현창 씨는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희귀 난치성 질환인 다발성 홍반성 구진으로 걸을 수도 없는 신현창 씨는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 몹쓸 통증이 또 전신을 휘감아온다. 혈관이 터지는 듯한 통증은 온몸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고통스럽다. 꼼짝 못하고 누워만 산 지가 벌써 6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돌봐줄 가족 하나 없이 누워만 있는 신세가 너무 서러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오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욕구는 쉽사리 포기가 되질 않는다. 가슴속 한켠에서는 '나도 언젠가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새록새록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통증과의 사투

신현창(51·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침대에 누운 채로 취재진을 맞았다. 앙상한 가지처럼 깡마른 팔다리에 몸무게는 채 50kg도 안 돼 보였다. 침대 위에는 약봉지와 물병, 생식가루, 리모컨, 휴대전화 등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현창 씨는 6년 전부터 '다발성 홍반성 구진'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다리가 퉁퉁 붓고 피부가 붉게 솟아오르며 심한 통증으로 걸음조차 딛을 수 없는 질환이다.

처음 병이 시작된 것은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아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였다. 다리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서 한걸음 딛는 것조차 힘이 들어진 것이다.

이곳저곳 병원을 옮겨 다니며 병명과 원인을 찾았지만 의사들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현창 씨는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치료법조차 알지 못하는 희귀병이라고 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의사들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한 달 3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그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루하루 더해가는 통증에 지쳐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는 현창 씨의 침대 위에는 민간요법과 관련된 책도 몇 권 놓여 있었다.

그는 "원인도 모르고 아파야 하는 게 너무 답답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책들을 읽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가장에서 나락으로

혼자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현창 씨. 하지만 그에게는 돌봐 줄 식구가 하나도 없다. 평범한 50대 남성이라면 대학생 자녀를 뒀어야 할 나이이지만 10여 년 전 이혼을 한 뒤 그는 혼자가 됐다.

한때는 그도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공기업에 직장을 얻어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출근했고, 결혼을 해 가정도 꾸렸다. 불행은 10여 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건강식품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쓰라린 실패를 맛본 것이다. 젊은 혈기에 '다시 시작하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모질게 이혼 서류를 내밀고 돌아섰다.

이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음식점에 신용카드 결제 기기를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오래가지를 못했다. 자금사정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사채에 손을 댔다. 인맥이 넓을수록 유리한 사업이다 보니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며 밤낮없이 뛰었지만 행운의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2007년 파산신청을 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겠다고 큰소리쳤던 그였지만 이제는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경제적인 무능력에다 병까지 겹치면서 오히려 부모님의 짐이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채빚은 그의 부모님까지 옭아맸다. 그는 "효도관광을 시켜드려도 모자랄 텐데 다 큰 아들 뒤치다꺼리에다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는 부모님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며 "지금은 부모님이 사채업자들을 피해 다니다 보니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됐다"고 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는 현창 씨. 그에게 있어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추억이 아니다. 오히려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일 뿐이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현창 씨

그는 이삼일에 고작 한 끼 밥을 먹는다. 그를 돌봐주고 있는 교회 지인들이 방문하는 날에야 겨우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그의 배를 채워주는 것은 '생식'.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생식가루와 물을 두고 하루에 두 번씩 배를 채운다. 이마저도 마음껏 먹을 수 없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에 정말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먹는다. 현창 씨는 "다리가 아픈 것보다 배가 고픈 게 낫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현창 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에 가는 일이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거리는 약 5m. 양손을 바닥에 짚고 무릎으로 기어서 가야 하니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린다.

비록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지만 그는 세상과 자신을 잇는 끈을 꼭 붙들고 있다. 교회 사람들이 모아서 가져다주는 일주일치 신문을 꼬박꼬박 챙겨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확인한다. 언젠가는 자신도 다시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도 많이 했다는 현창 씨. 하지만 6년의 고통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현창 씨는 "세상에는 나처럼 이유도 모른 채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언젠가 이 병이 낫게 되면 나처럼 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파도 희망을 놓지 않는 그가 두 발로 다시 바닥을 밟을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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