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취급 주의

입력 2010-07-07 07:23:24

택배가 왔습니다. 정사각형의 작은 상자였습니다. 윗부분에 '취급 주의'라고 매직으로 크게 써져 있더군요. 순간 내 손은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문구 한 구절이 사람 마음에 작용하는 힘이 크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인터넷 검색창에서 또 한 사람의 죽음과 맞닥뜨렸습니다. 연예인 남매의 죽음이 마음속에서 마무리되기도 전이라 더 허탈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에겐 죽음과 손잡을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잘생겼고 연기와 노래도 잘했습니다. 무엇보다 젊습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인간의 뇌는 중앙처리장치입니다. 그럼 마음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보조기억장치쯤 되지 않을까요? 간혹 중앙처리장치와 보조기억장치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겨 컴퓨터에 오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으로는 안 되는 일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의 충돌인 셈이지요. 강해 보이지만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은 두부처럼 물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페르소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구조화된 그 어떤 장치와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쉽게 꺼내 놓지 못합니다.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유하기는 더욱 힘들지요. 함께 일하고 웃고 떠들다가도 돌아갈 때는 늘 혼자입니다.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가슴속엔 빈집 한 채씩이 들어 있습니다.

컴퓨터의 성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의 삶의 질도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수십조 바이트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요. 그만큼 해커들의 지능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도 기승을 부리겠지요.

빈집에 바이러스의 공격은 치명적입니다. 기둥이 무너지고 서까래가 내려앉지요. 그때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바이러스 때문에 컴퓨터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잖아요. 알고 보면 사는 거 703호나 704호나 똑같습니다. 차이 나 보았자 한 끗 차이입니다. 그깟 한 끗 차이 때문에 남아 있는 용량을 포기하다니요.

아주 많이 힘들면 사람들에게 취급 주의를 부탁하면 어떨까요? 나 깨지기 쉬워, 나 상처받기 쉬워. 나는 덧나기 쉬운 체질이야. 그러니 함부로 흔들거나 던지거나 개봉하지 마, 라고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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