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歲月] 사진 수집가 정성길씨

입력 2010-07-05 08:00:29

"공장 팔고 집 팔아 사진 7만여장 모았죠"

1번 사진은 지금까지 흔히 소개된 서문시장 사진으로 1907년~1910년의 모습일 것으로 추정된다. 2번 사진은 1895년 촬영한 서문시장 사진인데, 1번 사진과 비슷한 위치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왼쪽 동그라미 친 곳에 관풍루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 읍성에 있었던 관풍루는 1906년 달성공원으로 이전됐고 서문시장에 있는 문루는 대구 읍성과 관련이 없다. 관풍루는 감사가 누 위에서 세상을 살핀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서문시장의 관풍루는 관리가 시장을 살피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1번 사진은 지금까지 흔히 소개된 서문시장 사진으로 1907년~1910년의 모습일 것으로 추정된다. 2번 사진은 1895년 촬영한 서문시장 사진인데, 1번 사진과 비슷한 위치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왼쪽 동그라미 친 곳에 관풍루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 읍성에 있었던 관풍루는 1906년 달성공원으로 이전됐고 서문시장에 있는 문루는 대구 읍성과 관련이 없다. 관풍루는 감사가 누 위에서 세상을 살핀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서문시장의 관풍루는 관리가 시장을 살피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성길(68·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씨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7만장 가량의 사진을 수집했다. 대부분 역사와 생활을 담은 사진인데, 국내는 물론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사진도 많다.

100여년 전 철거된 대구읍성 사진, 초기 계산성당, 관풍루가 있는 서문시장 풍경 등은 보기 드문 사진이었다. 대구와 한국의 근현대 역사관련 책을 펴낸 사람들 중에는 정성길 씨의 사진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성길 씨가 기록사진의 가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4년부터 5년 동안 독일에 살던 때였다. 당시 그는 독일의 한 성당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가톨릭 선교사들로부터 한국의 오래된 사진을 접하고 기록사진에 눈을 떴다. 그 시절부터 역사와 생활, 문화를 증언해줄 만한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진 수집을 위해 서독, 프랑스, 동독, 미국, 영국, 일본, 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을 다녔다. 비자도 없이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나라에 숨어 들어가기도 했고 그 때문에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1980년대부터 사진 수집을 위해 외국을 들락거리느라 공장도 팔고, 집도 팔았다. 7만장에 이르는 기록사진을 모았고, 유리원판으로 된 필름도 3천500여 장 갖고 있다고 했다.

정성길 씨는 "꼭 총을 쏘고 피를 흘려야 나라와 역사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사진으로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일은 피와 땀을 흘리며 싸우는 것 못지않게 가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진이 역사를 지키고, 진실을 알리며, 과거를 반성하게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수집한 사진들은 역사 반성, 진실 공개 등에 이바지 했다. 미국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위안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때, 그의 사진이 증거자료로 쓰이기도 했다. 또 망우공원에 재현돼 있는 '영남제일관'이 원래 '영남제일관'과 다르다는 사실도 100여년 전 사진을 통해 증명하기도 했다. 재현된 '영남제일관'은 3칸짜리지만 원래 영남제일관은 5칸짜리였다. 한양을 제외한 지방에서 5칸짜리 관문을 세운 경우는 영남제일관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만큼 대구의 위상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다.

정성길 씨는 한 장의 사진을 보더라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 기록된 역사적 의미를 파헤치려고 애쓴다. 사진이 증명하는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진실'을 확인하는 데도 열심이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장면(결과)을 놓고, 그 장면이 보여지게 되는 과정까지 면밀하게 추적하는 것이다. 정확한 추론을 위해서는 역사, 문화, 건축, 의복, 예술 등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정성길 씨는 "나는 필름도 갈아 끼울 줄 모르지만 사진의 중요성, 기록의 가치, 건축, 복식, 의료기기 등 여러 분야에 대해 자세하고 다양하게 알고 있다" 며 "모르고 보면 단순히 한 장의 사진일 뿐이지만 콘텐츠를 알고 살피면 그 속에 숨은 역사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고 했다. 그 같은 사진 판독 과정을 통해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과정, 대구읍성의 건설과 해체 과정 등도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있었다.

그는 역사기록 사진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깊이 있고 방대한 지식 없이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경우가 많고 일단 한 사람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면 뒷사람들은 '검증'없이 그 결론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한 사람의 틀린 해석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일반적 진실'이 돼버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성길 씨는 한-독 수교 120주년 기념사진전을 비롯해 지금까지 전국에서 34회에 걸쳐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동산의료선교 박물관, 목포 근대역사 박물관, 함평 일제 침략관 등에도 많은 사진 자료와 역사 자료를 제공해 박물관 개원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일본 관련 자료 사진이 많아 NHK 방송국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 그를 취재해 가기도 했다.

"단순히 구전이나 문자로 기록된 것은 실수할 가능성이 높지만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묻히면 다시 찾기 힘들다는 신념으로 사진 자료를 수집했고 사진자료를 근거로 틀린 것들을 지적해왔습니다. 사진을 근거로 잘못을 지적했다가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사진은 무척 중요한데도 여전히 '기록사진이 홀대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알립니다]

'사람과 세월-사진 수집가 정성길씨' 기사는 1895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서문시장 사진의 루(樓)를 '관풍루'로 표기했습니다. 그러나 조영화 대구시 문화재위원은 "관풍루는 경상감영의 정문"이라고 밝히고, "사진 속 장소가 서문시장이 분명하다면 그 루는 '서문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왔습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