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괘종 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새벽이 온다. 아내가 아침부터 깨우면서 우리 집 하루도 시작된다. 징징거리며 눈 부비는 아이들과 엄마와의 '다툼'이 으레 하루 일과의 첫 장이다.
아내가 밥그릇에 숟가락을 하나 걸치고 아들 녀석을 요리조리 따라다니며 졸라대면 "그럼 엄마를 위해 먹어준다"는 아들 녀석의 말이 '버릇'이 돼 버렸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남을 위해 먹어준다', 참 고약하다. 더 이상 아이의 말버릇을 그냥 둘 수 없어 아내에게 한마디 던진다. "먹기 싫으면 밥먹지 말라고 해. 배 고프면 먹겠지" 그러자 옆에 있던 아들 녀석이 지나가며 건네는 말이 가관이다. "밥 안 먹고 라면 먹으면 되죠." 도저히 아들의 말버릇을 이해할 수 없는데도 마음 좋은 아내이자 엄마는 그냥 아이들이 먹어준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단다. 아빠의 체면이 영 서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서 밥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의 아이들은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친구들에 대해 '찰나의 아픔'으로만 느끼는 걸까?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우리나라, 그래서 "엄마를 위해 먹어 줄게"는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마마보이에겐 자연스런 '내뱉음'이 된 것이다. 풍족하고 돈만 있으면 먹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머리 속을 차지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보릿고개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때는 그래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비록 주린 배를 마음껏 채울 수는 없었지만 식사를 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정겨운 때였다. 혹시나 큰 잘못을 저질러 꾸중할 때의 말씀, "이 놈의 자슥 밥도 묵지 마라"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으로 다가왔다.
요즘 아이들에게 밥은 그들만의 메뉴에서 사라진 것 같다. 부모들도 그저 자기 자식 귀한 것만 알고 오냐오냐 키우니 아이들의 말버릇 역시 '부모급'으로 격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보릿고개, 장냇쌀, 올깃쌀, 콩서리, 밀서리, 쫑그래이밥, 강냉이죽, 감똘개…' 가슴 아련한 아름다운 말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기만 하다.
요즘 나도 아이들에게 가끔씩 동화되는 것 같다. 아내가 식사를 재촉하면 "응 당신을 위해 먹어주지"라고 장난친다. 역시 아내는 그저 먹어 준다는 말에 싱글벙글. 그 모습을 보고 칭찬 하나를 얹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뭐니 뭐니 해도 당신 음식 솜씨가 최고야." 이제 한번쯤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의 빈곤이 만들어 낸 말버릇을 말이다.
김창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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