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 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여종희(대구 남구 대명 4동)
다음 주 글감은 '강추! 여름휴가 장소'입니다
♥70년대엔 물난리 연례행사
장대같이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추억의 시절로 되돌아 가봅니다. 지금은 제방시설이 워낙 잘되어 비가 내려도 그다지 큰 피해가 없지만 1970년대 그 당시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인명 피해와 농작물이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우리 집도 낙동강 부근에 있었는데 장마가 시작되는 이맘때가 되면 큰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황토빛의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마을 입구까지 올라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가재도구 등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상류에서 떠내려 오는 초가집 위에 가축과 집주인인 듯한 사람이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우리들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헬리콥터가 낙동강 위를 선회하며 아슬아슬하게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그치고 강물이 빠져나가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마을 대청소를 하곤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장마로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내리는 비를 보며 옛날 생각이 나 걱정을 해봅니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비 맞으며 하던 모내기에 녹초
내 고향 의성 사곡은 토종 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6월 중순이면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므로 서둘러 뙤약볕에서 보리 수확을 끝내고, 마늘 수확을 하지(6월 21일) 전후해서 끝내면 바로 모심기 작업에 들어간다. 196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들은 이맘때면 3, 4일 정도 가정실습을 받아서 고사리 손으로 영농 작업에 한몫을 했다. 그 당시 오뉴월의 하루 해는 나에겐 원망스럽도록 길었다.
먼동이 트는 새벽부터 모판에서 장맛비를 치적치적 맞으면서 모를 쪄 오전 8시경 들녘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바로 무논에서 모심기 작업을 했다. 낡은 비닐 우의를 걸치고 종일 비를 맞으면서 모심기를 하다 보면 종아리에는 거머리가 붙어서 피를 빨았다.
하루 종일 구부려서 일을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춥고 허기도 졌다. 미성년자였지만 허기를 채우려고 집에서 만든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나면 연방 트림이 났다.
정말 내 고향의 6월 말에서 7월 초순까지는 1년 중에서도 가장 힘든 영농철이었고 무엇보다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는 나의 어린 시절을 고달프게 했다. 그 당시 간절한 소망은 뜨끈한 온돌 방 구들목에 누워 실컷 자보는 것이었다.
오늘도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잠시 짬을 내어 밖을 내다보면서 어릴 적 그 시절 그 힘들었던 삶의 자국을 뇌리에 되새겨본다.
김경환(대구 북구 구암동)
♥학교 가는 다리 잠겨 임시휴업
1970년대 초반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조차 귀하던 시절, 여름이 올라치면 어머니께서는 일찌감치 앞 문짝의 반 정도를 모기장으로 발라 놓는다. 그러다 보니 방안에 누워서 보는 바깥 풍경이 시원하다. 나아가 서산에 걸린 태양이 꼴깍하여 밤이 돌아오면 하늘의 별만큼이나 반짝거리는 반딧불이의 불 축제를 보곤 했고, 그 사이 어느새 피 냄새를 맡은 모기가 모기장을 사이에 두고 앵앵거린다.
날이 밝아 어슴푸레한 새벽, 일찌감치 잠을 깬 나는 지난밤 뒤숭숭한 잠자리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어 눈을 뜨기가 무섭게 앞마당으로 내려선다. 아버지는 어두움 저 넘어 논둑에 어른거린다. 곧장 널찍한 토란잎사귀를 꺾어 머리에 이고 냇가로 달린다. 예상대로 눈앞으로 금방이라도 방천 둑을 넘칠 것 같은 누런 황톳물이 폭넓은 비단을 펼친 듯 넘실거린다. 징검다리도 섶다리도 모두 물에 잠겼다. 해방이다. 오늘은 장맛비로 인해 학교엘 가질 않아도 된다.
오늘 같은 경우는 결석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임시 공휴일이다. 아니 공휴일보다도 낫다. 이유인즉 온천지가 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께서는 이래저래 농사일을 접는다. 이제는 그저 놀 일밖에 없다. 외양간에 든 소가 갑갑증이 인 듯 "음~!메!"하고 보채지만 오늘만큼은 그 또한 아버지 차지다.
잠시 뒤 빗줄기가 한층 가늘어지면 어른들이 벌이는 고기잡이에 따라나설 생각에 내 마음은 시시각각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어머니가 "야, 이놈아! 물 구경이 무슨 큰일이라고 멀쩡한 토란 이파리는 왜 뜯고 난리고!"하는 꾸중에도 그저 "히~!"하고 웃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방천 넘어 사는 또래의 철수가 어머니께 꾸중을 듣는 나보다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장맛비가 내린다. 산사태, 홍수 등 곧장 닥쳐올 피해가 걱정스럽다. 올 한 해는 각별히 준비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물난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장마 전 이불빨래하고 나니 개운
며칠 전 뉴스에서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이불 빨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두 채씩 세탁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다할 수도 있지만 말릴 공간이 부족할 뿐더러 보름 전부터 세탁할 때면 덜거덕거리는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기사는 부품값이 만만찮다면서 시끄러워도 쓰다가 고장이 나면 새것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설명해 주었다. 맞는 말이기에 아침에 하던 빨래를 오후에 한다. 이웃에 소음으로 피해가 갈까 해서.
이렇게 장롱 안 이불은 모조리 다 세탁기 안에 들어가야 했고 따가운 햇볕을 쫴야만 다시 장롱 안으로 넣을 수 있었다. 마지막 이불이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던 토요일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준비를 하면서 이불 빨래를 하는데 다른 날보다 더 큰 소음을 내면서 돌아가던 세탁기가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큰일났다는 생각에 세탁기 안을 들여다보니 세제 거품만 위에 하얗게 보였다. 아무리 작동을 하려 해도 기척 없는 세탁기 속에서 이불을 꺼내 고무통에 물을 틀어놓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아무리 밟아도 거품이 쉽게 가시지 않아 포기 상태로 방치해두고 남편한테 전화했다. 사정 이야기를 하며 세탁기를 사러 가자고 했더니 선약이 있다면서 내일 가자고 했다. 생각 같으면 혼자 달려가 사올 수도 있지만 세탁기 구입할 현금이 부족할 뿐더러 신용카드가 남편한테 있기 때문에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날 아침 주말이라 늦잠을 자야 하는 남편을 서둘러 깨웠고 전자제품 매장에 가자는 내 말에 세탁기 상태를 점검하더니 전원을 켠 후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매장 가는 걸 포기하고 이불 빨래를 다시 해 장마가 오기 전에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있었지만 아직도 세탁할 때마다 덜거덕거리는 세탁기가 정지될까 봐 불안하다.
그래도 올 장마 준비는 이 덜거덕거리는 세탁기가 해줬다. 마지막 이불이 장롱 안에 가지런히 들어가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뽀송뽀송해졌다.
박선영(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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