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들도 '루저'로 살아가는가?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제목 '제리'는 노래방에서 여성 고객을 위한 도우미로 뛰는 남자가 노래방에서 쓰는 이름이다. 주인공인 나(여자)는 재수 끝에 수도권의 2년제 대학 야간부에 입학한 학생이다. 공부에는 재주도 취미도 없다. 그렇다고 다른 재주나 취미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엄마(소설에는 아버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가 제 때 먹여주고 입혀 준 덕분에 몸뚱이는 그럭저럭 잘 발육했고, 잘 발육한 만큼 육체적 욕망은 있어서 이놈 저놈하고 마구 '섹스'를 하고, 사시장철 술만 마셔대는 한심하고도 한심한 여대생일 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20대 남녀 주인공들이 나이에 걸맞은, 나이 값을 하는 장면이라고는 섹스하고 술 마시는 장면뿐이다. 이 외에 이들은 어떤 나이 값도 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바로 이 지점을 '벌거벗은 삶, 하드보일드한 삶의 질감, 낯선 무늬, 메타포가 아니라 리얼리티' 라고 평가했는데, 열심히 사는 20대가 보면 웃을 일이다)
한심한 여자인 나는 '제리'라는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래방 도우미 녀석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녀석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제리는 키도 크지 않고, 인물도 별로고, 그렇다고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지만 스스로 보기에도 연예인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제리는 노래방 도우미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업계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사연을 늘어놓는다. 제리의 상황은 탈출할 곳이 없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노래방 도우미인 제리가 주인공인 '나'와 노래방에서 섹스를 나누며 늘어놓는 내용인데,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섹스를 하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여기서 '이 바닥'을 굳이 '노래방 남자 도우미'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취업시장이든 진학시장이든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잘 팔려나가지 못하는 '노래방 도우미'라는 처지는 '제리'를 비롯해 주인공인 '나' 혹은 '루저'로 전락한 모든 20대가 처한 환경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가진 것도 없고, 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하늘에서 복이 툭 떨어져 주지 않으니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오늘의 작가상' 당선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은 이를 '21세기적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라고 평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저기 파라다이스가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고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고 지껄여 댈 뿐이다. 마치 자신이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을 '세월(환경)'의 잘못인 양 느끼도록 한다. 물론 소설 어디에도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타인 탓으로 돌리는 부분은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느껴진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인간이 사는 세상에 '파라다이스'가 있는가?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오히려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싫든 좋든 그것이 세상살이의 보편적 이치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가까운 곳에 파라다이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롭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곳에서 살 자격이 있는데, 나쁜 놈들이 거기로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고 선동하는 진짜 나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일하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고, 어떤 노력도 하기 싫은 이들은 언제나 '이런 선동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타인 혹은 다른 조건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신은 게임에 임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기록한 '골'이 없다고 불평하는 형국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게임에 임해서 열심히 뛰고도 골을 넣지 못한 사람들, 재수가 없어서 죽도록 뛰고도 자살골을 기록한 사람은 정말 울고 싶어질 것이다. 공부 안 하고도 100점 맞고 싶고, 일 안 하고도 배불리 먹고 싶고,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살 안찌고 날씬해지고 싶다니….
(소설 속 주인공이여, 섹스에 탐닉하지 말고, 종일 술만 마셔대지 말고, 어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뭐든 좀 해 보라. 인생이 지금처럼 한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여, 아이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내 탓이다. 어른 탓이다'고 말하지 마시라. 어른들이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아이들은 정말 어른들이 잘못해서 자신들이 불행한 줄 안다)
사람들은 어째서 '세상이 절대적으로 공평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열심히 일(공부도 포함)하는 사람이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어째서 모두 '위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째서 '생각대로 T'라고 제 마음대로 지껄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루저'의 눈에 '위너'들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쨌거나 이 소설은 '루저'로 전락한 20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20대들이 이 소설에 얼마나 공감할지 궁금하다. 225쪽, 1만1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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